“무역전쟁 끝내기 카드…시진핑, 중국제조 2025 속도조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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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끝내기 위한 카드로 중국이 ‘중국제조 2025’ 계획의 수정 또는 속도 완화를 추진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블룸버그통신 등 미 언론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제조 2025’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5년 발표 후 추진하고 있는 첨단산업 육성 정책이다.

중국, 시한 10년 늦추는 방안 검토 #WSJ “외국기업 참여 확대도 고려” #미·중 무역전쟁 촉발시킨 핵심 #미 “검증절차 필요” 여전히 강경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시작하면서 정조준한 공격 목표이기도 하다. 미·중 무역전쟁 해소를 위해 중국이 중장기 산업 정책을 변경할 용의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중국제조 2025’ 계획 가운데 일부 목표 시한을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일부 항목의 시한을 당초 2025년에서 2035년으로 10년 미루는 방안을 제시하며 양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정책 당국과 고위 관료들이 ‘중국제조 2025’를 대체하는 정책 초안을 작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완전한 대체보다는 전략 수정에 무게를 뒀다. 소식통은 “수정안은 중국이 첨단 기술 제조업 분야 리더가 되려는 야심을 축소하고 외국 기업의 중국 경제 참여를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고 말했다.

‘중국제조 2025’는 중국의 기술 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이다. 중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첨단 제조업 분야 세계 최고 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2025년까지 달성해야 할 제1단계 행동강령이다. 로봇공학, 인공지능(AI), 통신장비, 항공우주, 바이오기술 등 10개 분야를 선정했다.

외국 기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목표를 명시했다. 핵심 부품의 중국산 비중을 2020년까지 40%,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리는 게 ‘중국제조 2025’의 당초 계획이었다. WSJ는 중국 정부가 계획을 수정할 경우 자국 기업의 시장점유율 목표치를 낮추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나치게 야심찬 목표 때문에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남발하고, 외국 합작 기업에 기술 이전을 강요하며, 지식재산권을 훔치는 등 불공정한 무역 관행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인식이다.

중국 관료들도 ‘중국제조 2025’의 변경 필요성을 일정 부분 인정한다고 WSJ는 전했다. 류허 중국 부총리를 비롯한 고위 관료들은 ‘중국제조 2025’가 경제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정부 보조금과 대출이 남발되면서 전기차 배터리 같은 업종은 극심한 공급 과잉을 겪고 있고, 이 같은 현상이 오히려 생존능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중국은 또 중국 국영기업과 중국 민간 기업, 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는 공정 경쟁에 관한 정책도 준비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를 대체하는 새 정책을 내년 초 내놓을 계획이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90일간의 휴전 및 무역협상 시한은 내년 3월 1일까지다. 중국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내려보내는 지침에선 이미 ‘중국제조 2025’라는 용어가 사라졌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중국이 핵심 산업 정책까지 후퇴시킬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WSJ는 “트럼프 행정부 일부 관료들은 중국의 태도가 실질적인 변화보다는 겉치레에 불과하다고(cosmetic)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 기업인과 관료들은 중국이 불공정 행위를 근본적으로 시정하지 않고 정책 문패만 바꿔 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한다. 존 뉴퍼 미국반도체산업협회장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덜 차별적인 대우를 받게 되는 건 환영하지만 중국이 정책 이름만 바꾸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CNBC 방송에 출연해 “중국과 무역협상이 타결되려면 검증(verification) 절차가 당연히 있어야 하고, 이행 방안도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와 마찬가지로 검증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발언이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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