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마찰, 또 하나의 시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이 포괄분야와 지적 소유권 분야에서 한국을 우선 협상 대상국으로 지정할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미국은 통신분야에서 지난 2월 협상이 결렬되자 한국을 우선 협상 대상국으로 지정한데 이어 오는 5월에는 추가로 2개 분야에서도 지정할 것이 거의 기정 사실처럼 되어있다.
정부는 어떻게든지 우선 협상 대상국 추가 지정만큼은 피해보려고 고위 정부 당국자들을 미국에 보내 우리의 통상협력 노력을 설명키로 하는 등 다각적인 시도를 계획하고 있는 것 같은데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의 시장개방 속도에 대한 미국 정부가 갖고 있는 불만이나 미 업계가 한국을 상대로 우선 협상국을 지정해 주도록 미국 정부에 요청하고있는 강도에서 볼 때 상황은 비관적이다.
앞으로 2개월 남짓 사이에 판가름 나겠지만 최근 미 업계의 동향은 우리의 계산을 훨씬 넘고 있다. 미상의·영화협회 및 각종 식료품 위원회 등 21개 업종 단체와 회사들은 최근 미국 무역법 301조에 규정된 우선 협상국으로 한국을 지정해 주도록 미 무역대표부 (USTR)에 요청했다. 일본이 17개, 대만과 EC가 각각 8개와 7개 업종 단체·회사들로부터 우선 협상 대상국으로 지정 요청 받은 것과 비교하면 한국 무역 관행에 관한 미 측의 인식이 어느 정도 인지를 알 수 있다.
어쨌든 무역협상 대상국으로 지정되면 미국에서 주장하는 불공정 무역관행에 관해 통상 1년(지적 소유권 분야는 6개월)이내에 한국은 협상을 통해 개선을 해야되고 이에 불응하면 미국이 슈퍼 301조를 발동, 보복 관세부과 등 보복조치를 하게 된다. 포괄분야는 미국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전반적인 불공정 무역관행을 문제시하는 만큼 포괄 우선 협상국 지정 후 어떤 형태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트집잡아 어떤 수입상품에나 보복할 수 있게되어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미국이 이렇게까지 나오게 된 절박한 입장은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재정적자,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본, 서독, 대만에 다음 가는 대미 무역 흑자국인 한국과의 무역적자 축소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한국이 불공정 무역국의 대표격으로 지목 당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비록 지난해 한국이 86억 달러의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했지만 미국은 우리의 대미 무역 불균형 시정 노력에 대해 평가를 외면하고 있다. 미국은 시장개방 확대, 원화 절상, 구매노력 등은 거의 도외시하고 더욱 가혹하게 나오고 있다.
현 단계에서는 우리의 어떤 항변도 상대방을 납득시키기 어려운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도 냉정하고 의연한 입장에서 선택을 모색하는 것이 최선의 길일 것이다. 비록 우선 협상 대상국으로 지정되어 불이익 당하는 한이 있어도 미국의 요구를 전면 수용함으로써 한국 경제가 핍박해질 수는 없다고 본다.
우선 협상 대상국 지정은 통상 마찰의 종결이 아니고 또 하나의 시작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전개될 협상에서 소분대실하지 않도록 국민 경제차원에서 우리의 대응자세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농산물의 예 에서 보듯이 대내적으로 이해 조정이 안돼 시장개방이 엉거주춤한 사이에 미국이 파상적으로 공세를 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기하지 않도록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여 산업재편과 구조 조정을 통해 미국의 요구 가운데 협조적으로 수용할 것과 어떤 압력에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업계로부터 우리의 개방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측에도 책임이 많다는 점을 반성해야 된다. 미 관련업계를 제쳐놓고 고위 저명 인사위주의 통상외교는 문제가 많다. 업계끼리의 상호 이해증진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