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뮤지컬 '라이언 킹', 그 가격파괴의 계산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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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의 뮤지컬 티켓 값은 너무 비싸다. 일반 관객이 더 많이 찾아 오기 위해선 가격이 떨어져야 한다."

일본 최대 극단 시키(四季)의 한국 진출 선언과 함께 아사리 게이타 대표의 일성은 '뮤지컬 가격 파괴'였다. '라이언 킹'의 최고 티켓 값은 9만원. 현재 한국에서 공연되고 있는 해외 대형 뮤지컬의 최고 티켓 값이 대략 12만~13만원인 것에 비하면 30%가량 싼 값. 뮤지컬 관객으로선 반가운 소식이다. 게다가 '라이언 킹'은 1년 제작비 215억원으로 역대 한국에서 공연된 뮤지컬 중 최고 제작비다.

시키는 한국 뮤지컬 시장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말인가. 비결은 '공연 기간'이다. 공연 기간은 제작비만큼 뮤지컬 티켓 값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올해 국내에서 공연된 대형 수입 뮤지컬 중 아이다(8개월)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의 공연 기간은 3개월 미만이었다.(표 참조) "장기 대관이 불가능한 만큼 티켓 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항변이다.

제작비와 공연기간, 그리고 티켓 값의 함수를 따져 보자. 뮤지컬 제작비는 크게 사전제작비와 운영비로 나뉜다. 사전제작비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의 비용, 즉 대본.음악 등의 창작 비용과 무대 세트 설치비,대관료 등이다. 운영비는 공연이 시작된 이후 지출되는 비용이다. 매달 지급되는 스태프.배우 개런티 등 인건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A라는 뮤지컬이 사전 제작비 50억원, 매달 운영비 10억원이 드는 데 비해 한 달에 15억원어치의 티켓을 판다고 가정해 보자. 운영비와 티켓 판매액만 따지면 이 공연은 한 달에 5억원씩 이익을 내고, 공연 시작 후 10개월째가 되면 사전제작비까지를 포함해 손익분기점에 이르게 된다. 10개월 이후 내는 수익은 몽땅 호주머니로 들어오게 된다. 이렇게 계산해 보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20년 가까이 공연된 '오페라의 유령' '캐츠' 등이 얼마나 큰 수익을 내는지 짐작할 수 있다.

'라이언 킹'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티켓 평균값을 7만원으로 잡고, 샤롯데 극장(1227석)의 1000석을 채운다면 '라이언 킹'은 하루 7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게 된다. 한 달이면 21억원, 1년이면 242억원이다. 아무리 티켓 값을 낮추고, 1년 제작비 215억원이 든다고 해도 1년 장기 공연을 하면 손해는 보지 않는다.

결국 뮤지컬이 수익을 내기 위해 필수조건은 '장기 공연'이며 이는 전용 극장이 확보돼야만 가능하다. 한국뮤지컬협회가 성명서를 내는 등 크게 반발하는 것도 국내에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용 극장에서의 장기 공연의 혜택(?)이 시키에게 처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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