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읽기] 눈 만 있으면 100만원이 10억으로 매혹적인 그·림·재·테·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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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비운의 화가’ 반 고흐(1853~90)가 자살하던 해에 그린 ‘가셰 의사의 초상’은 미술품이 얼마나 큰 돈이 될 수 있느냐를 보여준 상징이다. 고흐는 살아서 단 한 점의 작품을 파는 무명 화가였지만, ‘가셰…’는 1990년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며 낙찰돼 고흐의 영전에 돈벼락을 안겼다.

돈이 되는 미술
김순응 지음, 학고재
264쪽, 1만2000원

제목 한 번 솔직하다. 내놓고 미술로 돈을 벌어보자고 부추긴다. 부제는 '성공하는 미술 투자 노하우'. '주식 투자 실전법'처럼 '미술 재테크 안내서' 다. 어떤 작품을 어떻게 사야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는지 첫 걸음부터 가르쳐준다. 조만간 미술품 투자가 붐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이 책 바탕에 깔려 있다.

지은이는 '그림 값 부르는 남자' 김순응이라 돼있다. 김순응(53)씨는 국내 양대 경매사의 하나인 K옥션 대표. 경매 진행자인 경매사 노릇을 즐겨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20여 년 금융 기관에서 일하며 미술애호가를 자임하다 경매회사에 초빙됐다."돈과 관련된 공부를 했고, 돈 다루는 일만 하다 돈이 되는 그림에 일찌감치 눈떴다"는 필자 소개가 재미있다.

"미술품을 오로지 예술로만 바라보는 것은 구태의연한 생각이다. 우리나라도 점차 미술품이 하나의 대체 투자자산(Alternative Asset Class)으로 자리 잡고 있다. (…) 돈이 많든 적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잘만 하면 언젠가 10억 원이 될 작품을 지금 100만 원에 살 수 있다."

귀가 솔깃한 투자 초대다. '언젠가'라는 막연한 기약이 좀 걸리지만 1000배 장사가 어디 쉬운 일인가. 주식과 부동산에서 빠진 뭉칫돈이 미술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는 분석 또한 입맛 당기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이 참에 미술품에 투자 좀 할까' 쯤으로 덤벼들었다가는 큰 코 다친다고 지은이는 경고한다. 멋도 모르고 뛰어들기에는 미술품이 몹시 까다롭고 어려운 투자 종목이기 때문이다. 미술품을 사모으는 컬렉션의 기본부터 컬렉터의 다양한 모습, 미술품 값의 속사정, 경매장 들어가기, 한국 미술시장 트렌드, 숨은 보석 찾기까지, 현장에서 비싼 수업료 치르며 몸으로 익힌 투자 정보와 바람직한 자세를 차근차근 일러준다.

경매 얘기가 많은 것은 지은이가 경매사 대표인 까닭도 있지만 "우리도 점차 경매를 중심으로 한 미술시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나름의 방향타를 잡은 데서 온 듯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1,2위를 다퉈온 반 고흐와 파블로 피카소 작품의 경매 현장을 생중계한 듯한 '세기의 경매' 대목은 소설처럼 읽힌다.

지은이가 알짜만 골라 따로 쓴 '돈이 되는 가이드' 몇 가지를 맛뵈기로 소개한다. △ 내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은 남도 안 산다 △ 돈 없고 눈 있으면 테마 컬렉션을 시도하라 △ 단 한 점이라도 직접 사봐야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 작품과 작품가를 반드시 입력해두라 △ 도록이나 포스터에 실린 작품을 노려라 △ 경매가를 맹신하지 마라 △ 가격이 막 오르기 시작한 작품을 사라 △ 믿을 만한 곳에서 사라 △ 트렌드를 주도한 작품을 사라.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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