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평가 관련 대통령 담화 전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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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어 국민 여러분께서는 저를 대통령으로 직접 뽑아 주셨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취임한지 이제 1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하고 저에게 맡겨진 역사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오직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로 일해 왔습니다.
저는 국민 여러분께 약속 한중간 평가를 실시할 준비를 갖추도록 얼마 전 민정당과 정부에 지시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우리 국민 모두가 성취한 큰 보람과 새로운 도전이 교차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이 시국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중간 평가를 국민투표로 실시할 것을 검토해 왔습니다.
저는 조용한 가운데 찬반 의사가 자유로이 표시되는 국민투표를 치러 저의 공약 실천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평가를 받고 우리가 나갈 길에 대한 국민의 합의를 얻으려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중간 평가는 대통령인 저와 국민 여러분간의 약속을 실천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여야간 다툼의 대상이 되거나 국민을 가르는 대결의 불씨가 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입장에서 그 동안 세 야당 총재들을 비롯한 각계 지도자와 국민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어 왔습니다. 특히 야당 지도자들에게는 혼란 없이 엄정하게 증간 평가가 실시될 수 있도록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중간 평가 문제를 둘러싸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어떻습니까.
과연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국민투표 가공 고도 되기 전에 정국은 대결과 격돌로 치닫고 있습니다.
정국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정당마다 각기 다른 시각을 가지고 시기· 방법· 성격 문제에 관해 이견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야당은 지금 이 시기에 중간 평가 실시하는 것을 반대하고 미루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느 당은 실시하려면 정책 평가로 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당은 신임을 건 국민투표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법률가 단체에서 중간 평가를 국민투표 방식으로 받는 것 자체가 헌법 위반이라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정국을 안정시키고 더욱 견고한 민주화를 실천하려는 중간 평가 본래의 의미를 무색하게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전환 기적 현상으로 국민이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사회 일각의 좌익 포력 세력은 벌써부터 「정권 타도」를 외치며 공공시설을 파괴· 점거하고 있습니다.
중간 평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는 발판으로 삼아 이들은 도처에서 드러내 놓고 폭력 파괴 행동을 격화하려 하고 있습니다.1년밖에 안된 정통성 있는 민주 정부를 뒤엎고 지금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중간 평가받겠다고 하니 지난 대통령 선거때와 똑같은 과열· 혼난 상이 재연되려 하고 있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수준 높은 국민의 양식에 판단을 구하는 투표가 아니라, 돌멩이· 화염병을 던지는 폭력 세력과 이를 최루탄으로 진압하는 대결 상황이 또 다시 빚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내부의 모든 갈등· 대결 요인이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터져 나와서 원만한 중간 평가가 될 수 있겠으며, 나라와 국민은 어떻게 될 것인지… 저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 여러분은 서울 지하철 파업 등 봄철 노사 분규와 학원 소요를 걱정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때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불법 집단행동과 폭력 파괴 행위가 더욱 확산된다면 이사회는 극도로 혼란해질 것입니다.
이 문제로 인해 정치·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면 어려워지고 있는 수출 환경, 물가, 그리고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민생 치안과 사회 기강도 흐트러지게 될 것입니다.
제가 만난 많은 지도자와 국민들도 이 시기에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국민적 단합과 합의를 가져오기보다 국력의 소모와 국민의 분열만 초래할 것을 걱정하였습니다.
중간 평가 둘러싼 오늘의 현실은 그 본래의 뜻과는 달리 새로 열린 민주 질서의 정착을 위태롭게 하고 나라를 위기 상황으로 몰아갈 위험까지 들어내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전환 기적 현상으로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는 지금, 이 문제로 온 사회와 나라가 뒤집어 질듯 시끄럽게 될 때 그 피해는 과연 누구에게 돌아가겠습니까.
좀 시끄럽더라도 국민투표에서 신임을 받으면 대통령과 정부의 힘이 강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결과 여하를 떠나 나라와 국민에게 이처럼 부담과 불안을 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저는 어떠한 경우에도 분열과 혼란을 가져오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나라의 오늘과 장래에 대해 책임을 진 대통령으로서 엄숙한 심경으로 이 문제에 관한 저의 단안을 밝힙니다. 저는 이시기에 중간 평가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나라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중간 평가 실시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중간 평가 문제는 그 시기와 방법 등을 신중히 재검토하여 반드시 나라의 장래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결정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결연한 의지로 오늘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현재 우리가 맞고 있는 모든 문제를 풀어 가는데 온힘을 집중할 것입니다. 저는 민주주의 질서를 전복하려는 폭력 파괴 활동과 각종 불법 집단행동부터 다스려 안정된 사회를 이룩할 것입니다. 경제· 민생· 복지 등 긴요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 해갈 것입니다. 지난 시대의 잘못을 청산하는 문제도 여야의 정치력을 발휘하여 마무리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지난날의 응어리를 푸는 일과 명예회복, 보상 등 실질적인 청산 작업이 서둘러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피땀 흘러 이룩한 성취를 바탕으로 내일을 향하여 나아가느냐… 여기서 주저앉고 마느냐를 결정하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저는 국민 여러분께 서울 올림픽을 성공시킨 그 결집된 힘을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또 한번 발휘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여야 정치인, 각계 지도자, 그리고 국민 여러분 모두가 오늘 저의 이 결정을 계기로 이 나라를 최선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데 협력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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