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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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북핵 문제만으로도 버거운 한국의 외교 상황에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가 현안으로 던져졌다. 정부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난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은 지난 4월의 1차 파병 때와 비슷하게 찬반으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과연 한국은 지난 50년을 이어온 혈맹 미국의 요청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또 민족의 미래와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북핵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이라크 파병과 북핵 문제, 한.미동맹 재조정 문제 등을 놓고 한반도 전체가 요동치는 상황 속에서 한국 외교를 책임진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나 한반도의 운명과 국익, 한.미동맹의 미래 등에 대해 들어봤다.

-얼마 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출석 당시 이라크 추가파병을 놓고 추미애 의원과의 설전이 화제를 모았다. 서로 목소리를 높여 논쟁을 해 평소 점잖은 성격의 尹장관이 핏대가 났다는 말들이 있었는데….

"제가 '그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온 것과 다른 행동을 한 것 같아 반성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부족한 점이 많고 해서 평소 '온유하며 지혜로운 사람'을 삶의 모토로 해왔는데 (이번 일은) 지혜는 물론 온유 부분에서도 잘못됐다. 아마도 '굴종'같은 특정 표현 때문에 좀 그랬던 것 같다."

-이번 정부 출범 후 대미외교 등을 놓고 야당 등 비판적인 쪽에서는 '아마추어'라는 비판이 있었다. 그런 비판과 굴종이라는 단어가 연계돼 더 화가 났던 것은 아닌지. 아마추어라는 평가에 대해선 어떤 생각인가.

"내가 왜 흥분했었나 생각해봤는데,'시각'때문이 아닌가 한다. 외교는 상대방도 인정하고 나도 인정해야 떳떳한 관계도 되고 신뢰도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 전제 하에서 한.미 관계를 바라봐 왔다. 다만 한국의 역사 과정이 워낙 험하고 당한 일도 많기 때문에 강대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일종의 피해의식이 개재돼 있다. 문제는 그런 생각들을 기초로 외교를 하면 풀릴 수가 없고 신뢰도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방 행동은 모두 음모론으로 이해되고, 진취적.적극적 이니셔티브도 취하지 못한다. 교수 시절 '피해자라는 전제 하에서 외교는 하지 말자. 그런 시각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이므로 실질적으로 돌파구가 있어도 찾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가르쳤다. '굴종'이란 표현을 들었을 때 그 같은 평소 생각이 떠올라서 화가 났던 것 같다."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요구 받은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또 현재 정부가 파병과 관련해 결정한 것이 있나.

"미국 측으로부터 파병에 관해 협조요청을 받아 검토 중인 단계다. 국회에서도 의원들이 그 같은 질문을 했는데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 정도 밖에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파병문제가 대략 언제쯤 윤곽이 나올지는 알려야하지 않겠나.

"정해진 것은 없다. 그러나 연내에는 결론이 날 것이다."

-추가파병이 결정되면 연내에 파병하나.

"아직은 모르겠다."

-파병하자는 입장이 정부 내에 많은가.

"정부 인사들과 그 점에 대해 별로 얘기를 못해봤다. 정부 내에서 찬성.반대 중 어느 쪽이 더 많다는 판단이 서지않는다. 외교부 입장도 정해진 것이 없다. 현재로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 중이다."

-우리가 파병하지 않으면 미국이 2사단을 이라크로 뺄지 모른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국내 일부 인사들이 그런 얘기를 한 것이지 미국 쪽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은 전혀 없었다."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2차 라운드는 어떻게 돌아가나. 북한이 참가한다고 언질을 해온 것이 있나.

"언질은 없다. 그러나 1차 회담 종료시 중국이 요약한 북한 입장에 '회의가 지속됐으면 좋겠다'는 취지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조만간 2차 회담 개최를 위한 당사국들의 노력이 개시될 것으로 본다."

-2차 회담 개최 시기를 놓고 10월설이 나오다 최근엔 11월설이 나오는데.

"10월은 아세안(ASEAN)+3(한.중.일), 아태경제협력체 각료회의(APEC) 등 외교일정이 많아 11월설이 나오는 것이다."

-파병문제나 6자회담 모두 한.미 동맹과 뗄 수 없는 이슈들이다. 한.미 동맹과 관련해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문제, 주한미군 2사단 재배치 문제 등에 대해 국민의 관심이 높다. 이 문제와 관련한 논의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SOFA 개정 문제는 원래 합의된 대로 꾸준히 이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미군 재배치는 2006년까지 동두천 주둔군을 1단계로 재배치하고 2단계는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하되 한국상황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한다는 합의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미 대사관을 덕수궁 터에 짓는 문제를 놓고 역사학계.시민단체의 반발이 크다. 물론 이미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장관의 견해는.

"대사관 부지 이전은 노태우 대통령 재임 당시 우리 측이 먼저 제의해서 합의된 내용이다. 1986년, 90년 두 차례 각서를 체결한 만큼 약속은 이행돼야 한다고 본다. 다만 국내에 문화재법이 있으므로 미국과의 약속과 문화재 보호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법이 중요하다. 현재 덕수궁 터 지표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결과를 보고 판단할 것이다. 만일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오면 다른 방법, 이를 테면 대체부지 선정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미국을 어떻게 보아야하나. 또 한.미 동맹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세 가지 차원으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양국은 한반도가 탈냉전으로 이행하는 과정이 평화롭게 진행되도록 관리하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냉전 이후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는 데 양국이 적극 상호협력해야 한다. 둘째는 동북아지역의 평화 구축에 파트너가 돼야한다는 점이다. 동북아는 유럽과 달라 권력정치적 측면이 강하고 상호 견제와 의심이 강한 지역이다. 따라서 한.미 동맹을 통해 동북아 내의 국제관계를 고양해야 한다. 셋째는 테러문제.대량살상무기 문제.환경문제.인권문제 등 21세기 지구촌의 글로벌 어젠다들을 해결하는 데 상호 협력하는 관계다. 그런 점에서 한.미 관계는 단순히 대북관계의 종속변수로 봐서는 안 된다."

-교수 시절에 밖에서 보던 한국 외교의 수준과 장관으로서 직접 현장에서 부닥치는 한국외교의 수준에 차이가 있나.

"들어와보니 잘하고 있더라. 인구 5백만명인 덴마크는 외교관이 1천4백명인데 4천만이 넘는 한국은 외교관이 1천3백명뿐이다. 일본도 정부기구들을 축소하면서도 외교부는 오히려 강화했다. 한국은 92년과 2002년 사이 대외교역 규모가 두배로 뛰고 외교업무량도 엄청나게 많아졌지만 외교인력은 1천7백50명에서 1천5백32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어려운 여건을 고려할 때 우리 외교관들이 잘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한국은 월드컵 4강에 경제 규모론 12위다. 특정 민간 분야는 세계 1위도 있다. 외교수준은 몇 위쯤 된다고 보나.

"(웃음)어려운 질문이다. 그 부분은 대답을 유보하겠다."

-취임 후 편안한 날이 하루도 없었겠지만 그래도 가장 어려운 순간은 언제였나.

"인수위 시절 미국에 가서 한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을 때였다. 그 때 국회에 출석해 어떻게 답변해야 하나 걱정이 컸다. 그러나 그 과정은 좋은 경험이 됐다. 언론과 국회 기능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면 장관과 관료들이 정신 차리고 일하게 되리라는 신념은 확고하다. 그 다음은 북핵 위기다. 지금은 좀 진정됐지만 몇 달 전만 해도 북한군 전투기가 미군 정보기를 추격해 긴장이 고조되고 미국 정부 인사의 한마디에 주가가 춤추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외교가 지나치게 대미.대일 관계에 편중됐다는 시각이 있고 외교부 내에서도 미국 라인, 일본 라인이 요직을 독식하는 등 특정파벌만 득세한다는 얘기가 있다.

"대미.대일 편중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냉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상황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현재 한.중관계의 성장이 굉장히 빠른 만큼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활용하느냐가 외교 다변화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본다. 외교부에 들어오면서 파벌이 존재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이 문제를 유념해 인사를 했다. 다면평가를 비롯해 몇 가지 객관적 원칙들을 정하고 인사에서 그것을 공개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슨 파니 사단이니 하는 것들이 서서히 없어지고 전문성.능력 위주의 인사 원칙이 확립될 것으로 본다."

정리=강찬호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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