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빼고 통과시킨 한국GM 법인분리 … 법원서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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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경영 정상화를 추진 중인 한국GM의 계획에 변수가 생겼다. 연구개발(R&D) 법인 분할기일(30일)을 이틀 앞둔 상황에서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산업은행이 한국GM을 상대로 제기한 ‘분할계획서 승인 건’에서, 한국GM 주주총회가 결의한 사항의 효력을 일부 정지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한국GM은 “법원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GM은 지난 21일 로베르토 렘펠 대표이사 등 GM 테크니컬센터 코리아 이사회 임원 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오는 30일을 분할 기일로 잡고 다음달 3일 분할 등기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법원이 법인 분할 과정에 제동을 걸면서 연내 R&D 법인을 설립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발생했다.

고법, 주총 결의 효력정지 결정 #“R&D법인 신설 찬성 85%에 미달 #정관 규정 위반해 중대한 하자” #GM “주총 다시 열거나 소송낼 것”

한국GM은 지난달 19일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R&D 신설법인(GM 테크니컬센터 코리아) 설립 안건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이 안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국GM의 2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선임한 이사들이 참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GM에 따르면 당시 산업은행이 선임한 이사들은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 한국GM 본사를 방문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한국GM지부(한국GM 노조)가 이들을 저지하면서 주주총회가 열리던 본관 회의실에 입장하지 못했다. 주주총회 개최가 지연되자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서 선임했던 이사들은 산업은행 관계자들이 없는 상황에서 안건을 의결했다.

법인분리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산업은행은 지난달 29일 법원에 주주총회에서 결의한 사항에 대한 효력을 중단해 달라는 내용의 가처분신청서를 제출했다. 산업은행은 “절차적 하자가 있는 주주총회를 개최한 사실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받기 위해 가처분신청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쟁점은 R&D 법인 분할이 특별결의사항에 해당하느냐다. 상법상 주주총회 결의사항은 보통결의사항과 특별결의사항으로 구분한다. 특별결의사항은 통상 보통결의보다 더 회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을 처리한다. 대신 그만큼 출석자·찬성률 요건도 더 까다롭다. 한국GM의 경우 특별결의사항 요건으로 발행주식총수의 85% 이상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 GM 본사와 산업은행은 주주간 계약서에서 특별결의사항을 열거하고 있다. 양측이 체결한 비밀유지계약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특별결의가 필요한 사항 중 하나로 법인분리와 같은 의사결정을 뜻하는 포괄적인 문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이 문구의 해석이다. 한국GM은 신설하는 R&D 법인이 단순한 인적분할이기 때문에 특별결의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GM 보통주의 82.9%(약 3억4400만주)를 보유한 GM 본사·계열사는 모두 분리법인 설립 계획에 찬성표를 던졌다.

반면 산업은행은 지분구조가 신설법인에서 동일하게 유지되더라도 한국GM 자산 규모가 달라질 수 있고, 2대 주주들도 여기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특별결의사항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GM 주주총회는 찬성률 요건(85%)을 갖추지 못해 여기서 결의한 사항도 무효가 된다.

재판부는 28일 “회사분할은 특별결의의 대상”이라며 “보통주 85%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한 결의는 정관 규정을 위반한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 판결에도 법적 대응을 하면서 한국GM은 R&D 법인 신설을 재추진할 계획이다. R&D 법인이 본사 직할 조직으로 거듭나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고 업무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한국GM의 주장이다. 한국GM은 “GM 테크니컬센터 코리아 설립은 한국GM 경영 정상화를 이끌고 한국GM 노동조합·주주·협력사 모두에게 최선”이라며 “본안소송을 제기하거나, 산업은행을 설득해 주주총회를 다시 개최해서 GM 테크니컬센터 코리아를 설립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문희철·김영민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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