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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과 구멍 뚫린 국가 기록 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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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그곳에 비석(사진)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 근처에 취재를 갔다가 우연히 비석을 보고 사진까지 찍었지만 그냥 넘겼다. 최근 그 비석을 떠올린 것은 4대강 재(再)자연화를 검토한다며 환경부가 백제보 수문이 잠시 열었다가 닫았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비석은 충남 부여읍 금강 백제보 전망대·금강문화관 옆에 있다. 1번 비석에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주역들의 이름을 이곳에 새겨 그 공을 기린다. 2012년 5월 5일 대통령 이명박”이란 글도 있다. 비석 4개의 각 면에는 가나다순으로 이름을 빼곡히 새겼는데, 모두 3043명이다.

그중에는 내 이름과 같은 사람도 2명이나 있다. 그들이 누구이고, 어떤 공을 세웠는지 궁금했지만 이름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4대강 전도사’로 알려진 P씨, 당시 환경부 장관을 지낸 L씨, 4대강 사업 추진 본부장과 부본부장을 지낸 S씨와 C씨 이름도 있지만, 실제 그들인지, 동명이인인지 확인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에코사이언스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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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할 것 같지 않은 이름이 2번씩 나오는 경우도 많아 명단을 성의 없이 작성한 것도 같았다. 비석에 이름을 올린 K 교수는 “자문회의에서 4대강 사업에 비판적인 발언을 했는데도, 자문위원이라는 이유로 거기에 이름을 넣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오해를 풀 필요도 있었다.

결국 이달 초 그들의 직책과 공적(功績)을 알려달라고 정보 공개를 요청했다. 국토교통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의 대답은 “직책은 개인정보라서 공개할 수 없다. 공적사항은 정보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추천과 심사를 어떻게 거쳤는지도 물었지만 역시 자료가 없다고 했다.

디지털 강국이라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게 믿기지 않았다. 삼국시대 때 비석도 아니고, 세운 지 겨우 6년이 지났을 뿐이다. 국가 기록 관리에 구멍이 크게 뚫린 셈이다. 혹시라도 정권 교체로 불이익을 당할까 염려돼 일부러 자료를 없앤 것이라면 사태는 심각하다.

공적을 기리겠다고 비석을 세웠다면, 적어도 바로 옆 금강문화관에서는 이들 ‘4대강 주역’의 공적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4대강 복원보다도 이들 자료를 복원하는 게 더 시급한 일일 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국토부·환경부·수자원공사를 뒤져 자료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