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경수로를 재활용 한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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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KEDO)가 지난달 31일 북한 경수로 사업을 공식종결했다고 발표했다.1994년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남한과 미국, 일본이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한 사업이 10년 6개월만에 빈손으로 끝난 것이다.

지금까지 경수로 건설사업에 들어간 돈은 총 15억 달러가 넘는다.이 가운데 70%를 한국이 냈고, 나머지는 일본과 유럽연합이 부담했다. 한국은 11억 달러가 넘는 돈을 날리게 된 셈이다. 여기에 2억 달러의 사업 청산비용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우리가 '봉'이 됐나는 얘기다. 한국은 청산비용을 내는 대신 경수로 건설에 쓰려고 했던 1백 MW급 원자로 2기와 기자재 등을 넘겨받기로 했기 때문에 크게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또 한국 정부는 해외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할 때 원자로와 기자재를 재활용할 방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자유아시아 방송에 따르면 한국의 이같은 방안은 입발린 소리에 그칠 공산이 크다. 미국외교협회의 핵전문가 찰스 퍼거슨 (Charles Ferguson) 박사는 2일 자유아시아 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건설 중인 다른 발전소의 설계와 맞지 않으면 원자로를 재활용하기가 곤란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현재 남한은 원자로 규모를 대형화하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1백 MW급 원자로를 활용할 곳이 마땅치 않을 공산이 크다. 남한내에서 재활용하지 못할 경우에는 해외에 수출하거나 앞으로 북한에서 다른 새 경수로를 짓게 될 경우에 이를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의 원자로 해외 판매는 국제적인 수출통제에 저촉될 수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 퍼거슨 박사는 일단 제작된 원자로는 늦어도 몇 년 안에 가동하지 않으면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남한의 대북 경수로 설비 재활용 주장이 한갓 '입발린 소리'에 불과한 이유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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