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13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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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이풍연의 진정서는 좀더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성(性)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참으로 신비한 생명 현상이오. 정상적인 관계에 있는 남녀 간의 성행위는 지극히 아름다운 것이오. 물론 불륜 관계에 있는 남녀의 성행위는 당사자들은 아름답게 생각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역겨운 것이지만 말이오.

그런데 왜 정상적인 관계의 성행위에 대한 묘사까지 사람들이 꺼리는 것이겠소? 성적 흥분을 일으킨다는 이유를 대지만 사실은 자기 속에 일어난 성적 흥분이 엉뚱한 곳으로 발산될까 싶어 두려워하는 면도 있을 것이오. 그 성적 흥분을 소중하게 간직하여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에게 발산한다면 그리 문제될 것도 없을 것이오.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다고도 하는데 그 점은 나도 인정하오. 아이들은 자제력이 없어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르니 말이오. 그러나 아이들에게 성적인 문제들을 쉬쉬하며 숨기기만 하면 아이들은 성행위는 몰래 숨어서 해야 하는 더러운 것으로 치부하기 쉬운 법이오.

아이들도 성행위라는 것이 얼마나 신비하고 아름다운 현상인가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오. 그러할 때 성적인 기운을 오물을 내버리듯 함부로 쓰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할 거란 말이오.

내가 음담패설을 늘어놓기만 한다고 고발당했지만, 사실은 성적인 기운을 잘못 쓸 때는 어떤 재앙이 임하고 성적인 기운을 올바로 사용했을 때는 어떤 행복이 찾아오는가를 말하고 싶었을 뿐이오. 이쪽 이야기든 저쪽 이야기든 성행위를 말로 옮겨야 하니 자연 음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는 오해를 받은 것이오.

기력이 살아있는 남녀라면 하루종일 거의 쉬지 않고 성에 관하여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 사람의 마음을 옮기는 소설에서 성적인 것을 금기시한다면 그보다 더한 위선이 어디 있겠소? 거의 쉬지 않고 성에 관하여 생각하는데 소설에서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말한다면 차라리 솔직한 편이라 할 수 있소.

자신은 그런 것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데 소설이 자신을 오염시킨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곤란하오. 소설은 이미 오염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케 하는 일도 하는 법이오. 정 듣기 싫으면 내가 이야기하는 곳을 떠나버리면 되오. 제발 재미있게 다 듣고 나서 침을 뱉고 돌아서지만은 말아주시오.

나를 고발한 화자준이라는 그 작자도 사실은 청하현 사자가 거리에서 내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할 때 맨 앞에서 재미있게 들으며 박장대소했던 사람이오. 그 사람이 나를 고발했다니 뭐 대주고 뺨 맞는다는 속담이 생각나오.

화자준이라는 그 관리는 현감이 바뀔 때마다 현감에게 얼마나 아부를 잘 하는지 현청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오. 자기처럼 현감에게 아부하지 않는 관리가 있으면 그 관리가 이전 현감에게 얼마나 아부했는가를 성토하기에 여념이 없소.

자기도 이전 현감에게 누구 못지않게 아부하였으면서도 자신은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처럼 말하고 다니고 있소. 그래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소. 하도 급하게 바뀌니 또 다른 현감이 오면 어떻게 변하나 하고 모두들 지켜보고 있소.

이제까지의 행태로 볼 때는 또 다른 현감에게 아부하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 분명하오. 지금은 화자준이 제법 바른 말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그때 가서는 화자준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오.

그렇게 변신의 명수인 화자준이 나를 음란죄로 고발하였소. 현명하신 부윤께서 내가 음담패설을 좀 했다고 이런 죄인 취급까지 받아야 하는지 살펴주시기 바라오'.

진문소는 화자준이 변신의 명수라는 이야기를 이풍연이 왜 하고 있는지 잠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앞의 문장을 다시 읽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나서 고발을 했으니 변신의 명수가 아니고 무엇이냐 이런 말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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