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폭동의 배경|개방 바람 타고 자치 요구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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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계엄령선포는 지난59년 1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티베트독립을 위한 무장봉기 30주년(10일)을 사흘 앞둔 시점에서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취해진 예방 적 조치로 보인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 5일 수도 라사 시에서 중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라마교 승려들에게 중국경찰이 발포, 11명이 사망하고 1백여 명이 부상하면서 비롯됐다.
티베트는 중국 5개 자치구중의 하나로 서장자치구로 통칭되고 있는데 인도 및 네팔 등과 접경하고 있으며 중국의 사천·청해 성에 인접해 있다.
티베트는 13세기 이후중국의 일부처럼 여겨 져 와 영향을 받아 왔으나 오지인 탓으로 나름대로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50년 중국에 의해 무력침공을 당하고 51년 5월 17개항의 합병조약을 체결하면서 결국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게 됐다.
중국정부는 이후 거의 온 주민이 대승불교에 티베트 고유의 토속신앙과 풍속이 가미된 라마교를 숭상하는 티베트의 신권정치체제를 해체하고 사회주의의 접목을 강요해 결국 59년 1만 여명의 사망자와 최고지도자「달라이·라마」가 수천 명을 이끌고 인도로 망명하는 유혈폭동을 가져 왔으며 이로부터 중국정부에 대한 티베트 인들의 적대감정은 유혈시위로 이어져 왔다.
중국당국은 시위가 거세어지자 문화혁명(66∼76년)까지 4천여 개의 사원을 파괴하는 등의 억압정책을 수정, 지난80년부터 일부 라마교 사원의 부활, 티베트경제개발을 위한 지원(연 2억 달러 수준), 부분적인 티베트어 교육 등 차별완화를 골자로 하는 유화정책을 써 왔다.
그러나 2백만의 티베트주민들은 아직 중국의 공산주의와 한족의 지배에 심한 반감을 느끼고 있다.
티베트인구의 3%에 불과한 중국인들이 정부요직이나 공장책임자의 40∼50%를 차지하는가 하면 각종 사업 등의 특혜를 받고 있으며 시위로 투옥된 티베트주민에게 가혹한 고문이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티베트 인들은 믿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특히 중국의 개방바람을 타고 반정부독립시위가 잦아지고 있으며 87년 폭동 이후4차례나 유혈사태가 이어졌다.
북경당국은 티베트 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종교지도자 「달라이·라마」가 티베트 독립을 포기할 경우 귀국을 허용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러나 그는 중국의 티베트 국방·외교문제 개입권을 인정하되 「상당한」자치권을 허용하라는 요구를 계속해 의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정부는 티베트의 자치권 인정이 기타소수민족의 독립요구시위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지난 60년 초부터 벌여 온 인도와의 국경충돌에 티베트가 아주 좋은 전략적 요충지 구실을 하고 있다고 믿어 티베트주민들의 요구가 쉽게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다.
게다가 지난 1월 중국정부와 티베트주민들간의 의견교환 창구 역할을 해 온 제2인자「판첸·라마」가 사망함으로써 양측의 협상은 더욱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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