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한·미 FTA협상 … 미국도 아킬레스 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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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본협상이 5일 미국 워싱턴 무역대표부에서 시작됐다. 김종훈 수석대표(왼쪽에서 세번째)와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오른쪽)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

미국과 한국은 이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시장개방 원칙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양국 모두 자국 산업 가운데 취약한 분야는 최대한 보호하고, 상대방의 약점은 집중 공략하는 전략을 펼칠 태세다.

그동안 미국은 협상 상대국에 따라 협상 전략을 매번 바꿨다. 필요에 따라 어떤 품목은 '전면 개방'을, 또 다른 품목은 '예외'를 뒀다. 미국은 상대국의 농업 경쟁력이 강하면 미국의 농업 보호기간을 가능한 한 길게 한다. 그 반대면 관세철폐 이행 기간을 최소화하려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2004년 2월 호주와 맺은 FTA에서 설탕을 비롯한 342개 품목(전체의 19%)의 시장을 개방하지 않기로 했다. 당시 미국은 설탕업계의 강력한 로비 때문에 설탕.버터.탈지분유 등의 전면개방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호주는 지상파방송 프로그램의 55%는 호주산 프로그램으로 충당한다는 '방송산업 콘텐트 쿼터제'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 미국은 칠레와의 협상에서 칠레 농산물의 수입이 급격히 늘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권)를 발동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

우리도 미국이 보호하고 싶은 품목에 대해 예외를 인정해주되 반대로 우리 핵심 품목 일부를 개방하지 않는 '윈윈 협상'이 가능한 셈이다. 결국 막판에 가서 쟁점분야에 대해 양국이 주고받기식 협상을 얼마나 이뤄내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될 전망이다.

한국은 칠레.EFTA.아세안 등과 맺은 FTA에서 쌀.사과.배 등 주요 농수산물의 개방을 예외로 돌린 경험이 있다. 상대국이 민감해 하는 품목에 대해서는 양보하되, 우리가 취약한 품목을 지켜내는 주고받기 식의 협상이 성공한 사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이준규 팀장은 "미국도 시장개방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품목이 많다"며 "이런 품목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통해 한국의 취약한 시장을 지켜내는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전문가들은 과거 FTA 협상에서 양국이 개방 예외로 했던 분야가 이번에도 쟁점 분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달 교환한 협상안 초안에서 미국은 농업을 상품분야에서 분리해 협상하자며 개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쌀시장 개방 제외를 요구하고 있어 치열한 협상을 벌일 전망이다. 자동차 세제, 신금융서비스.택배.외국법률 자문시장의 개방 등도 미국이 공격에 주력할 분야다.

반면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예외를 두기 원하는 분야는 목재.선박 등이다. 미국은 ▶외국산 원목 수입금지▶연안 해운의 미 국적 선박 독점 등의 기존 조치를 예외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미국이 해운시장 개방에 민감한 것은 안보 문제 때문이다. 현재 미국 내 해상연안 수송은 미국인이 건조.소유.등록하고 미국 선원이 승선한 선박만 가능하다.

이 밖에 미국은 FTA가 체결되면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섬유도 특별 세이프가드 제도를 도입하자며 방어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 미국 반덤핑 조치의 남발을 줄여달라고 하고 있다. 또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를 놓고 미국 측과 힘겨운 협상이 기다리고 있다. 자본시장 개방확대를 요구하는 미국에 맞서 외국자본의 일시 유출을 막기 위해 외국인 투자에 대한 일시적 제한조치의 허용을 주장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최세균 박사는 "미국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섬유.설탕.연안 수송 등의 분야를 적극 공략, 한국이 취약한 농산물.서비스 시장의 개방 속도를 조절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홍병기.김종윤.김준현.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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