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생 바쳤는데 정권 바뀌었다고 적폐 취급하는 현실 서글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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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인순 한국원자력연구원 고문

장인순 한국원자력연구원 고문

장인순 한국원자력연구원 고문

한국원자력연구소장을 역임했던 장인순(78) 한국원자력연구원 고문이 정부의 출연연구원 기관장 사퇴 압박 의혹을 폭로했다. 1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면서다.

장 고문은 “지난 3월부터 하재주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 내게 찾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가 사퇴를 종용했다는 고충을 토로했다”고 말했다. 하재주 원장은 임기를 1년 이상 남긴 상황에서 20일 사임했다.

장 고문에 따르면 하 원장이 사퇴를 거부하자 정부는 지난 6월 서토덕 부산·경남생태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을 한국원자력연구원 상임감사로 임명했다. 서 상임감사는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 사무처장 출신이다.

장인순 한국원자력연구원 고문

장인순 한국원자력연구원 고문

장인순 고문은 “반핵단체 출신 감사가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오면서 하 원장이 마음 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정부가 공식 인사권자와 상의조차 하지 않고 출연연구원 기관장 사퇴를 종용했다는 의혹도 내놨다. 원칙상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의 인사권자는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이다. 장 고문은 “하재주 원장이 원광연 이사장에게 정부 사퇴 건을 묻자, 원 이사장도 ‘처음 듣는다’며 황당해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임명권자도 모르게 정부가 사퇴를 압박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의 조언은 ‘정부 압력에 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장 고문은 하 원장에게 ‘잘못한 게 있다면 정부가 책임을 물어 파면하고, 잘못한 게 없다면 정부가 임기를 보장하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하 전 원장이 그렇게 제안했더니 정부에서 ‘정무적 결정’이라고 답했다는 것이 장인순 고문의 전언이다.

한국에너지연구소핵화학연구부장

한국에너지연구소핵화학연구부장

허탈하다는 속내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선진국과 격차가 크던 시절 구걸하듯이 선진국에서 기술을 배워 한국 원자력 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며 “인생을 바쳤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원자력업계를 적폐 취급하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탄식했다. 또 “다른 분야는 몰라도 과학 분야만큼은 정권에서 자유로워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며 일침을 놓았다.

장 고문은 “석유자원이 풍부한 아랍에미레이트(UAE)도 원전을 만드는데,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원자력 발전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며 “먼 훗날 후손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원자력 기술·발전소를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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