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워킹그룹 출범…비핵화ㆍ남북협력 커플링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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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협력을 함께 논의하는 한ㆍ미 실무협의체인 워킹그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공식 출범한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특별대표와 실무그룹 1차 회의를 갖기 위해 청와대 국가안보실, 통일부 관계자들과 19일 함께 입국했다. 1차 회의엔 미국 측에서 국가안보회의(NSC)와 재무부 관계자도 참석해 북ㆍ미 고위급 회담 재추진 일정과 함께 남북 철도사업의 제재 면제에 대해 결론을 낼 예정이다. 사실상 비핵화의 진전에 남북협력의 속도를 맞추는 동조화(커플링)가 시작됐다는 의미다.

20일 첫 회의 "철도조사ㆍ착공식 일단락될 것" #"비건, NSCㆍ재무부 조율하며 남북협력 전권, #최선희 부상과 비핵화 협상 유인ㆍ압박 활용"

이도훈 본부장은 이날 특파원들과 만나 워킹그룹 출범과 관련해 “거의 조율이 다 됐다”며 “내일(20일) 1차 회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철도ㆍ도로 연결 사업 문제를 논의하느냐에 대해 “한ㆍ미 간 공조가 필요하고 협의가 필요한 것은 다 논의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워킹그룹이 일각에서 주장하듯 한쪽이 다른 쪽에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시스템으로 얘기하는 분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쌍방향적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이 19일 워싱턴에 도착해 특파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워싱턴 카메라 기자단]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이 19일 워싱턴에 도착해 특파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워싱턴 카메라 기자단]

그는 지난 8일 북한이 전격 취소한 북ㆍ미 고위급회담의 11월 말 재추진에 대해선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면서도 “지난번에 서로 아주 냉정하게 대처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잘해서 스케줄을 다시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철도 조사와 착공식에 대한 미국 측 제재 면제 결정이 늦춰진 이유는 “내부 검토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이제 충분한 검토 시간이 다 지났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고위 외교 소식통은 중앙일보에 “연내 공동조사와 착공식을 갖기로 판문점ㆍ평양선언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철도사업 문제는 워킹그룹 회의에서 일단락될 것”이라며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철도 조사와 착공식을 위한 세부 물자ㆍ장비는 행사 목적외에 전용이 안 된다”는 설득이 상당부분 받아들여졌다는 뜻이다. 착공식이란 명칭이 공사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에 제재 틀을 훼손할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에 대해서도 “의례적 행사”라는 설명해왔다.

다만 국무부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비건 특별대표가 이 본부장과 20일 만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한 긴밀한 공조를 보다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은 진행 중인 외교적 노력과 유엔 제재의 지속적 이행, 남북협력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무부 관계자는 철도사업 제재 면제 대한 질의에 “현재로썬 밝힐 내용은 없다”며 “1차 회의가 끝난 뒤 내용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만 했다.

이도훈(오른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면담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이도훈(오른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면담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주목할 건 이번 워킹그룹 발족으로 비건 특별대표에게 남북협력 사업의 추진과 관련된 제재 면제 협의의 전권이 주어졌다는 게 확인된 점이다. 국무부 장관이재무부 장관과 협의로 제재 면제를 결정하는 구조에서 폼페이오 장관으로부터 북한에 대해 전권을 부여받은 비건 대표가 재무부와 조정 역할도 하면서다. 앞으로 비건 대표가 남북 철도연결 사업뿐 아니라 다른 남북협력사업 추진을 비핵화 연계가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지 소식통은 “미국이 대북 제재를 엄격히 적용하면 미국산 핵심 부품이 사용된 노트북 한 개도 북한 반입이 안 된다”며 “비건 대표가 협상 상대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석 달째못 만난 상황에서 남북협력을 북한을 유인하거나 압박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미 재무부는 이날 북한에 685만 달러(약77억원)어치 러시아 석유를 중계한 남아공 국적자인 블라들렌 암첸체프를 추가 제재했다. 지난해 러시아 휘발유·경유를 대신 구매하며 돈세탁을 한 혐의로 기소된 싱가포르 무역회사 벨머 매니지먼트 직원이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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