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는 안되겠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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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평민당총재는 17일 스웨덴·헝가리 등 유럽5개국을 순방한 감상을 이렇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헝가리를 참 잘 가보았다. 가보니까 사회주의 갖고는 되지 않겠다는 것을 절감했다.』
김 총재는 『헝가리는 그래도(물건을 사기 위해) 줄서는 사람은 없어(다른 동구권국가보다는) 좀 나은 것 같더라』면서 불과 5시간 기착했던 모스크바공항의 경험담을 말했다.
『오후 4시쯤 모스크바공항청사의 대기실이 어두운데도 전기불이 켜져 있지 않아 왜 안켜느냐고 물어보니까 오후 5시가 돼야한다고 하더라. 공항기착대기실에 국제전화시설이 안돼 있고 학장실은 악취가 심해 도저히 국제공항으로 보기 어렵더라.』 사회주의체제의 비효율성과 낙후성을 지적했다. 물론 며칠간의 헝가리방문과 수 시간의 모스크바공항기착으로 김 총재가 사회주의 사회의 전체를 꿰뚫어봤다고 결론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젊은 한때 좌익활동(해방 후 당시 신민당)에 참여했고 그로 인해 지금껏 일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사고있는 김 총재가 그 짧은 사회주의권 일정에서 몸소 보고 듣고 겪은 경험을 토대로 『사회주의는 안되겠더라』고 한말은 퍽 의미가 있는 것으로 들렸다.
그는 또 이런 말을 했다. 『네덜란드·스웨덴·이탈리아에서 만나본 대부분의 수상·외무장관·국회의장 등 고위 정치지도자들이 한결같이 소련의 「고르바초프」 공산당서기장을 도와 그의 개혁·개방정책이 성공하도록 해야겠다는 의무감 비슷한 것을 갖고있더라.』
『서구지도자들의 이런 말이나 모스크바공항의 경험을 유추, 확대해보면 소련은 군사분야만 초일류국이지 나머지 분야는 2, 3류국인 것이 분명하더라.』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사회주의 체제로서는 현대의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수요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온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안되겠더라』는 그의 말속에는 오랜 독재체제와 빈부격차 등 우리 사회의 날카로운 구조적 모순에 아무리 실망하고 좌절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자유민주체제를 한층 튼튼하게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뿐이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지나친 확대해석은 아닐 것으로 생각됐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옛말의 진가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했다. 이수근<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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