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표류 어디서 오는가-송진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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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작년 말부터 서서히 수위를 높여온 중간평가 문제가 이제는 더 이상 결단을 미루기 어려울 정도로 물이 찰랑찰랑 코밑가지 차 오르고 있다. 중간 평가를 의식해 모든 정치가 흐르지 않고 괴기만 하고 정부는 과단성 있게 나가기가 어렵게되어 있다. 정부의 모든 일이 중간 평가용이라는 색안경의 관찰을 벗어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오늘날 정치상황은 한마디로 중간평가를 떠나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벌써 정치권은 국민투표와 있을지도. 모를 대통령 선거에 대비한 이해타산과 전략 전술에 마음을 뺏기고 있고 모든 정치활동은 중간평가에 대한 저울질 아래 이뤄지고 있다. 이미 해가 바뀌면서 각 정치세력은 중간평가를 계기로 한 잠재적인 정권 경쟁의 가능성을 앞두고 서로 승부 호흡을 조정하는데 바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통상적인 정치 기능은 경??되고 할 일은 산적해 있지만 정치권에서 제대로 해결되는 일이 없다. 그렇게 비판을 들으면서도 악법 개폐에 여전히 늑장을 부리는 것이나 도둑이 들끓고 민생에 허다한 문제가 발생해도 정치권이 둔감한 것도 관심과 신경이 딴데 가 있기 때문이다.
중간평가의 짐을 걸머진 집권 측의 처지는 한마디로 옹색하기 짝이 없다.
중간 평가의 결과 도중하차를 강요당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정권의 무게나 위신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공권력의 강력 발동을 그렇게 강조해도 효험이 없고 겁내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다. 설날을 되찾고 공휴일을 늘려준 것이 여론을 존중한 순수한 동기였는지 모르나 사람들은 중간평가용이 아닌가 하고 일단 해석하고 본다. 여권이 가장 자부하는 공산국과의 최초의 수교나 금강산 공동 개발과 같은 획기적인 일도 중간평가에 몰린 집권 측이 다급하게 추진한 것이라는 의심의 대상이 되고 실제 많은 허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처럼 오늘의 모든 일은 중간 평가에 가로막혀 되지도 않고 진전도 없다. 오히려 중간평가의「찬스」에 대비한 명분과「무기 축적용」으로 될 일도 안되고 작은 문제도 큰 문제로 증폭되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이 모든 상황으로 보아 중간 평가는 가부간 빨리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다. 오래 끌어서는 국익에도, 여에도 야에도, 어느 누구에도 득될 일이 없다. 득을 본다면 이 체제와 정권과 기성정치권이 죽을 쑬수록 기뻐하는 세력뿐이다.
그럼에도 당사자인 여권이 이 문제를 두고 우왕좌왕만 거듭할 뿐 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음은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권은 물이 코밑까지 찰랑거리는데도 지금껏 중간평가의 시기나 방식을 두고 한 말을 뒤집거나 이 사람 말 다르고 저 사람 말 다른 상태만 거듭하고 있다.
민정당에서는 국민투표를 안 할 듯이 말하다가 할 것처럼 말하는가 하면 조기실시를 외치다가 하반기 연기론을 펴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의 대 국민 공약에 야당이 왜 끼어드느냐는 것이 한때의 민정당의 대야 반박논리였지만 노 대통령이 야당의견도 들어 결심하겠다고 말하는 바람에 쑥 들어가고 말았다.
중간 평가가 대통령 임기와는 상관없는 정책 평가라고 한동안 주장하더니 대통령이 불신임 당하면 국회도 해산해야한다는 이른바 정면 돌파론이 나왔다.
최근엔 「지자제 실시 후 중간평가」를 시사한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발언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지자제 선거를 중간 평가로 대체하는 방안을 연구한다는 말이 들리고, 내각제 개헌과 중선거구제를 중간평가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논의한다는 말도 있다.
청와대의 말이 다르고 당의 말이 다르다. 무엇 한가지 통일된 의견이 없고 작심을 못하고 있는 인상만 준다.
이런 여권의 우왕좌왕은 결국 따지고 보면 자신감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다. 국민투표에서 질 경우 정권을 내놓아야 하는데 과연 50%이상 신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투표 아닌 국회표결이나 지자제 선거를 궁리하고, 신임 연계 아닌 정책평가를 생각하고 정기 실시에서 하반기로의 연기를 모색하는게 아닌가.
그러나 4당간에 극적인 합의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이제 와서 여권이 국민투표가 아닌 방식의 중간평가를 선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생각된다. 야당의 요구가 그렇고 각종 여론조사의 일관된 결과가 그렇다. 무엇보다도 노 대통령 자신의 공약이 곧 국민투표의 약속이었던 것으로 국민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유효성은 지극히 의심스럽다. 따라서 이제는 마음을 정리하고 결단을 내리는 길밖에 없는 것 같다.
판단은 국민에게 맡기고 단순히 공약을 공약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여기에 괜히 국회해산이니 4당 체제 신임이니 하는 엄포용 사족을 붙여서는 오히려 국민반감만 살뿐이다. 내각제가 아무리 좋더라도 중간평가에 붙여서는 될 일도 안 된다. 그냥 공약한대로 국민에게 묻는 것이 옳다. 공약에 뭔가를 얹어보겠다는 욕심도 부리지 말고 공약을 에누리하지도 말고 여의도 유세에서 말한 그대로만 하는 것이 가장 정도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여권 인사들이 지레 공포심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을 것이다. 몇 가지 여론조사의 결과도 그런 점을 말해주고 있고 야당 중에서도 민정당 정권에서 좀더 야단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야당이 있을 법도 하다. 야당 역시 겁나기는 마찬가지다. 여권이 미리부터 겁을 먹고 도망치는 정치만 한다면 기왕의 지지마저 깎아먹기만 할 뿐 아무런 실전이 없을 것이다.
신임이 걸린 국민 투표마저 자신이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 중간평가를 실사 통과한다 하더라도 나머지 임기의 안정적 정권운영은 난망일 뿐이다.
상황은 증간평가에 대한 빠른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구심력 있는 대처를 요구하는 허다한 중대사들이 국내외에 산적한 터에 중간 평가문제로 국정표류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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