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1.08인구재앙막자] 집안일 분담 리모델링 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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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류현아(37.서울 서대문구 현저동.가명)씨는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쓴다. 특히 출퇴근과 맞물리는 아침.저녁 시간엔 쉴 틈이 없다.

오전 7시30분 눈 뜨자마자 첫째 아들(9) 식사 준비를 한다. 류씨네 네 식구 중 첫째만 집에서 아침을 먹는다. 류씨 부부는 식사를 포기했고, 둘째 아들(4)은 어린이집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20분 만에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미리 만든 음식을 데우는 수준이다. 첫째를 깨우고, 아이가 씻을 동안 상을 차린다. 15분 뒤 밥을 먹은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 설거지는 생각도 못한다. 대충 출근준비를 하고, 둘째를 깨워 차에 태워 집을 나선다. 어린이집에서 둘째가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해 승강이를 한다. 부지런을 떨지만 류씨는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지각하는 일이 잦다.

반면 남편 모준영(41.공사 직원.가명)씨의 아침 일과는 간단하다. 부인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오전 8시5분에 집을 나서면 그만이다.

류씨는 직장에서도 아이들이 신경쓰인다. 첫째는 오후 2시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월~목요일에는 영어나 피아노 학원에 간다. 오후 4시 30분 집에 돌아와 숙제를 한다. 류씨는 혼자 있을 아이가 마음에 걸려 안부 전화를 한다. 퇴근 무렵 첫째에게 또 한 번 전화해 준비물을 확인한다. 어린이집에 들러 둘째를 데리고 집앞에서 준비물과 아이들 간식 등을 산 후 오후 7시30분 귀가한다.

이때부터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진다. 배가 고플 아이들을 위한 식사 준비, 빨래, 첫째가 집에 혼자 있으며 어질러 놓은 것 치우기 등은 류씨의 책임이다. 이러고 나면 오후 10시쯤엔 녹초가 돼 큰아이의 숙제와 준비물은 대충대충 점검한다. 류씨는 이 부분이 늘 아쉽다. "이제 곧 초등학교 고학년인데 앉혀놓고 공부는 못 가르칠망정 문제집 풀기 검사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너무 피곤해서요."

남편은 퇴근 후 TV를 보며 쉰다. 간혹 둘째의 저녁 먹는 것을 챙겨주거나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한다. 귀가가 이른 날에나 그렇다. 모씨는 이틀에 한 번꼴로 회식이나 친구 모임 등이 있어 늦게 귀가하기 때문이다.

반면 류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회식에 참석한다. 그것도 둘째를 어린이집에서 집에 데려다 놓은 뒤 뒤늦게 회식 장소로 가는 게 대부분이다. 이런 때면 초등학교 3학년인 큰아들이 둘째를 돌보기도 한다. 둘째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연장 보육 신청을 하기도 하지만 썰렁한 어린이집에서 엄마를 기다릴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웬만하면 피한다.

맞벌이 여부에 관계없이 남편의 가사노동 시간은 큰 차이가 없다. 2005년 통계청이 발표한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전업주부는 하루 평균 6시간25분, 직장여성은 3시간28분간 가사노동을 한다.

반면 외벌이 가정 남편은 31분, 맞벌이는 32분이다. 맞벌이 가정의 남성이 가사노동을 1분 더 하는 셈이다.

◆ 부부의 가사노동 시간은?

▶맞벌이 가구

여성 3시간28분
남성 32분

▶외벌이 가구

여성 6시간25분

남성 31분

자료:통계청 (2005)

◆ 특별취재팀=송상훈 팀장, 정철근.김정수.김영훈.권근영 사회부문 기자, 염태정.김원배 경제부문 기자, 김은하 탐사 기획부문 기자, 조용철 사진부문 부장

*** 아이들 숙제 챙기기는 남편이 전담해 나가야

류씨 부부의 사례는 한국 맞벌이 부부의 전형이다. 서울시와 가정법률상담소가 3~4월 서울 시내 기혼 남녀 795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남편은 주로 퇴근 후 휴식(50.4%), 아내는 가사(49.6%)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들은 가사노동을 '아내의 일'로 인식하고 있었다. 가사노동을 하는 이유가 '아내를 돕기 위해'(36.8%)였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성결대 신연희 교수는 "부인은 적극적으로 가사분담을 요구하고, 남편은 가사를 부부 공동의 일로 인식해야 한다"고 권했다. 특히 "남편은 곧장 귀가하는 요일을 정해 아내와 가사를 분담하고, 아내가 일하고 남편은 쉬기보다 부부가 함께 일하고 함께 쉴 수 있도록 바꾸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신 교수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자기 전에 자녀에게 책 읽어주기'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자녀의 숙제 챙기기' 등 특정한 일부터 남편이 전담해 나가라"고 권했다. 남편이 맡을 만한 영역은 자녀 양육과 관련된 일(자녀와 운동하기, 숙제 챙기기), 남녀 간 역할이 불분명한 일(관공서.은행 등 외부 일 처리, 집수리) 등이다.

신 교수는 또한 "류씨 부부의 경우 초등생 큰아들이 귀가 후 혼자 집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면 오후 몇 시간은 시간제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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