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반지성 어디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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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졸업의 계절이다. 입시 전쟁의 한바탕 격전이 끝나면서 정든 학교·학우들과 헤어지는 애틋한 석별의 정, 못다한 공부에 대한 아쉬움, 지금껏 가르쳤고 보살펴 준 스승과 부모에 대한 따뜻한 감사의 마음이 오가는 졸업의 풍경이 교정마다 열리고 있다. 중·고등학교의 졸업식이 거의 끝나면 이달 하순부터 대학의 졸업식이 열리게 된다.
졸업이란 「해당 학교의 전과정을 수료하고 그 수료를 학교 당국으로부터 인정받는 과정」이며 그 인정은 졸업장을 수여하는 졸업식의 형식을 통해 이뤄진다. 이러한 졸업의 의미 외에도 특히 최고 학부인대학의 졸업이 갖는 의미는 사회로의 진출이라는 통과 의례적 의미에서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되어야 할값진 의식이다.
4대 1에 가까운 높은 경쟁력을 뚫고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탁월한 학습 능력이나 4년간 연 2백만원에 달하는 엄청난 등록금을 내면서 학업을 마치게 되기까지의 경제능력 면에서 졸업을 맞게될 학생들은 이 사회에서는 선택된 신분임이 분명하다. 선택된 능력으로 대학 교육을 받은 학생이라면 그 선택된 환경에 대한 보은의 의미는 남다른 바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대학졸업 식장은 단순한 학위 수여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졸업생의 오늘이 있기까지의 감사의 마음이 열리는 자리여야 하며 책임 있는 사회인으로서의 자각을 다짐하는 엄숙한 자리여야 한다.
그런데 25일에 있을 국립 서울대의 졸업식장이 엄숙하기는커녕 운동권 학생들이 주도하는 소요의 자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총학생 회장의 환송사와 졸업준비 위원장의 인사말 및 교내 노래 서클의 공연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총학생회 주최의 별도 졸업식을 갖겠다고 으름장을 학교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대학 울타리 근처도 가보지 못한 채 피땀 흘려 일한 많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룩된 국립대학의 가장 뛰어난 선택된 영재들이 그들의 오늘을 있게 한 스승과 부모·사회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표하지 못할지언정 노래마당 한번 못 벌인다 해서 졸업식을 거부하겠다는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등록금을 학생회가 받겠다 하고, 총장 선출에 참여하겠다더니 이젠 졸업식까지 아예 학생들이 주도하겠다니 세계 어느 곳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졸업생 환송사를 학생회장이 하도록 요청하는 것까지는 있을 수 있으나 그밖에 누가 인사말을 해야겠다, 무슨 공연을 해야겠다는 요구는 지성인답지 않은 일이고 하물며, 대학 측이 불응하면 학생회 주관의졸업식을 별도로 갖겠다니 무슨 망발인가. 그 별도의 졸업식에선 누구로부터 졸업장을 받겠다는 것인가.
학생들의 순수하고 희생적인 집단 시위가 4·19와 6·29를 이룩했다. 그 거룩한 성취를 욕되게 하지않기 위해서도 반지성적·반이성적 집단 의사는 스스로 경계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회 있을 때마다, 틈이 보일 때마다 비집고 헤집어 투쟁의 결속과 운동의 범위 확산에 열을 올리는 최근의 학생운동에 사회가 몹시 안타까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민주화가 되기 위해서, 민주화를 이룩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학생의 사고와 행동은 좀더 차원 높게 다듬어져야 한다. 일체의 부정이 지성의 본령은 아니다.
이제 격정의 대학시절을 마치면서 학생들은 책임있는 사회인으로 편입될 것이다. 그 편입의 절차가 엄숙한 졸업식임을 자각하면서 철없는 요구를 용기 있게 거두고 지성인답게 깊은 생각을 다시 한번 갖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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