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글로벌 강소기업이다 5. 백산 OP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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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이범형 백산OPC 사장이 공장에서 프린터 드럼을 보여주고 있다. 신동연 기자

'인생은 육십부터.-'

백산OPC의 이범형(73) 사장은 이를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1994년 61세에 재생용 프린터 드럼을 만드는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드럼은 레이저 프린터의 카트리지에 들어가는 부속품의 하나다. 이 회사는 이 중 재생용 부품에 들어가는 드럼을 만든다. 90년 대까지도 이 시장은 미쓰비시.후지 같은 일본 일류기업이 주름잡았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전세계에서 쓰이는 재생용 드럼 넷 중 하나가 백산OPC의 제품이다. '프린터 종주국'이라는 일본에서는 시장의 65%를 장악했다.

그가 컴퓨터 부품 쪽에 도전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늦은 나이지만 세계 일류 기업을 만들겠다고 결심했어요. 소모성 부품 중에서 유통시장이 개방된 품목이 있는지 면밀히 조사해 봤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프린터 드럼을 알게 됐다. 방위산업체에서 20여년 동안 포탄용 알루미늄을 개발한 경험도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직원 20명을 모아 충북 진천에 회사를 차렸다. 알루미늄 가공 기술이 있다 해도 제품 개발은 만만찮았다. 수천만원 상당의 드럼용 코팅액을 쓰고 버리기를 수십 차례. 자금 압박은 점점 회사를 옥죄었다.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이 사장 본인도 뇌경색으로 두 차례 쓰러졌다. "아내와 아들이'사람 잡겠다'며 사업을 극구 말렸어요. 하지만 저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시행착오 끝에 97년 초 제품 양산에 성공했다. 이제 판로 확보가 문제였다. 이 사장 혼자 샘플을 둘러메고 미국.캐나다의 프린터 부품 업체들을 찾아다녔다. 가격은 경쟁업체보다 5% 정도 싸게 받겠다고 했다. 얼마 되지 않아 미국업체 토너플러스에서 "월 5만 개를 보내 보라"는 주문이 왔다. 이후 사업은 생각보다 잘 풀려나갔다. 98년 유럽에 이어 99년 일본 시장도 차례차례 뚫었다. 2002년에는 코스닥 상장도 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514억원이다. 전체 매출의 95%는 해외에서 들어온다.

그가 꼽는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서비스 정신이다. 전 직원들은 거래처에서 받은 e-메일을 24시간 내에 회신해야 한다. 제품 관련 정보를 취합해 거래처에 수시로 보내준다. 출범 초기부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하지 않고'한프(HANP)'라는 자사 브랜드를 고집했다. 초반에 시장 개척은 힘들었지만 브랜드가 알려지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중간 상인 없이 직접 거래처를 뚫은 것도 마진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지난해부터 큰 고민이 생겼다. 국내외 경쟁업체가 늘면서 30% 대인 영업이익률이 13%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 사장은 회사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올해 컬러 프린터 시장이 성장하면서 제품 수요가 그만큼 늘 것이라는 기대다.

진천=홍주연 기자 <jdream@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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