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뒷걸음 친 시험문제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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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학생 학부모 임모(45)씨는 7월에 광진구로 이사 간다. 아이 때문에 좀 더 좋은 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갈 생각이다. 가능한 학교는 J고, K고, 그리고 또 다른 K고다. 하지만 어느 학교가 더 좋은지 알 방법이 없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묻고 다닌다.

영국에서라면 상황이 다르다. 영국 교육기준청(OFSTED) 홈페이지(www.ofsted.gov.uk)에 접속하면 상세히 알 수 있다. 거주지 우편번호를 입력한 뒤 클릭하면 된다. 주변 학교들에 대한 100쪽 가까운 상세한 보고서가 떠오른다. 최근 5년간 국가 수준 평가시험 성적, 진학률 등이 담겼다. 하지만 한국에선 학교 정보가 담장 밖을 거의 넘어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교사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중간고사 문제.평가기준 등을 학교 홈페이지 등에 공개토록 했다. 전교조가 주장해 온 대로 내신 성적을 확 높였으니 학교 시험문제를 공개해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성적 사정이 완전히 끝나 수정도 할 수 없는 방학 중 공개하는 것으로 바꿨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사들의 업무 부담이 커지는 것을 감안해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물론 명분이다. 사실은 전교조 등의 반발 때문이다. 시험문제 파일을 학교 홈페이지에 띄우는 건 한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교사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서울 S고 이모 교사는 "가뜩이나 내신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학생과 학부모들의 민원이 쏟아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K고 윤모 교사는 "문제가 공개되면 다른 학교와 비교돼 부담스럽다"고 했다.

이런 교사들의 태도에 대해선 냉소적 반응이 많다. 인터넷에는 "그렇게 자신이 없느냐" "비교되기 싫으면 노력하라"는 댓글들이 올라 있다.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박유희 이사장은 "교사들이 교권은 강조하면서 비교되는 건 반대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시험문제 공개를 요구한 교육부도 과연 정책 추진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장혜옥 전교조 위원장이 찾아와 "시험문제 공개를 철회해 달라"고 요구하자 "올해부터 공개 의무화하는 게 맞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대부분의 교사는 교사평가에 반대하고, 시험문제 공개도 반대한다. 학교 내 경쟁도, 학교 간 경쟁도 반대한다. 그러면서 입만 열면 '교권'을 앞세운다. 권리만 찾고 의무를 외면하는 이런 몰염치가 어디 있는가.

강홍준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