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읽기] 혼혈, 성적 매력 넘치는 '다산의 상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혼혈 파워
앨런 지브 지음, 윤재석 옮김
부글북스, 256쪽, 1만원

인종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19세기에 혼혈은 열등한 것으로 취급됐다. "근친상간과 비슷하게 자연에 반하는 죄"라는 식의 판단은 폴 브로카 같은 주요 인류학자나 생물학자들도 마찬가지였으니 일반인의 편견이야 말할 것도 없다. 혹인과 백인 사이의 1세대 혼혈아를 뜻하는 뮬라토(mulatto)라는 말도 그렇다.

저자는 "이 단어가 노새를 뜻하는 스페인어'mula'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받았다"고 털어놓는다. 암말과 숫당나귀 사이에서 난 노새는 새끼를 못 낳는 '결함을 가진 잡종'이고, 따라서 혼혈은 나쁜 것이라는 편견을 담고 있다(168쪽). 저자의 이 책은 이런 편견을 180도 바꿔주는 작업이다.

저자에 따르면 혼혈은 노새같은 결함은커녕 거꾸로 다산(多産)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혼혈이 갖는 생물학적 특성은 멋진'좌우 대칭'내지 균형이다. 좌우 대칭은 질병에 강한 것은 물론이며 성적 매력을 포함하는 핵심 미덕. 곤충을 포함한 42개 생물학적 종(種)들도 좌우균형이 뛰어날 때 다른 녀석들보다 건강하며 짝짓기에도 훨씬 유리하다.

"좌우 균형이 잘 잡힌 파트너를 둔 여자들은 오르가즘을 느낄 확률이 월등히 높다"(57쪽)는 주장은 애교로 들린다. 따라서 이 책은 진화생물학.동물행동학 등 자연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한 열렬한 혼혈 예찬이다. 4분의 1만이 흑인인 골프 스타 타이거 우즈부터 할리 베리 등 할리우드의 혼혈 스타들의 사례들을 거론하면서 독자들을 즐겁게 해준다.

"동과 서를 막론하고 지금은 혼혈 폭발의 정점에 와 있다"(242쪽)는 저자의 단언은 단일민족이라는 오랜 신화가 막 깨져가는 한국 사회에도 의미있는 선언으로 들린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