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보고서로 돌아본 조선시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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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호 32면

책 속으로 

100년 전 살인사건

100년 전 살인사건

100년 전 살인사건
김호 지음, 휴머니스트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조사관이 현장에 달려나가 피해자를 검시하고 관련자를 취조한 뒤 상부에 보고했다. 조선 시대 CSI 보고서가 바로 검안(檢案)이다. 검시문안(檢屍文案)의 줄임말이다.

지은이는 서울대 규장각 자료에서 접한 100여 년 전 ‘살인 수사 문건’에서 당시 민중의 거친 숨소리를 들었다. 증언은 그들의 고단한 삶과 굴곡진 일상을 고스란히 담았다. 삶의 단면을 통해 거대한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미시사’ 기록이다.

이 책은 규장각 2000여 책에 나오는 검안에서 15개의 사건을 추렸다. 잔혹한 범죄 사실과 적나라한 생활상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범인이 발각이 어려운 교묘한 살해 방법을 고안해 검시관과 숨바꼭질하는 경우도 있다.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이 제각각인 점도 흥미롭다.

검안은 생생한 사건과 다채로운 인간 군상에 더해 이를 보는 사람에게 인간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묘한 매력까지 있다. 이를 재료로 추리 소설과 영화를 여럿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장삼이사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남긴 드문 ‘기록 유산’으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왕조실록이나 문집을 통해 자신의 기록을 다량으로 남겼던 왕가나 사대부들과 달리 글을 몰랐던 서민들은 간접기록인 검안을 통해서야 자신들의 생각과 삶을 후대에 전달한 셈이다. 지은이를 이를 ‘역사 저편의 역사’라고 불렀다.

지은이 김호 경인교육대 교수는 조선 시대 보건의학사를 연구해온 드문 학자다.

채인택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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