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돌아볼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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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해변의 고즈넉한 미술관에서 열린 사진작가와의 대담을 위해서였습니다. 주말임에도 모인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은 작가가 20년 넘도록 추구해온 시도의 동기를, 과정을, 그리고 결과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지난 20년의 한 개인의 흔적들이 전시장의 벽을 채우고 있는 장면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뜻의 작가라는 이름은 이력서에 남아있는 경력이나 구술되어 전해지는 무용담보다 훨씬 손에 잡혀지는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여러분의 지난 20년은 어떻게 돌아볼 수 있을까요?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는 자신의 부모님들의 삶을 연구와 발품으로 엮어내 아름다운 추모의 책을 내었습니다. 지난한 현대사의 20세기를 겪어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소설책 10권 분량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이야기해주겠다 하지만, 노명우 교수처럼 바지런한 자녀를 두지 못한 대부분은 남기지 못한 기억을 안고 생을 마감합니다.

그 기억 또한 완전하지 않습니다. 오래전 어떤 기억은 또렷한데 막상 어제의 일도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옆자리 친구가 선생님에게 손들고 이야기한 나의 잘못은 지금도 이불을 발로 차야 할 만큼 부끄럽지만 누군가에게 무심코 건넨 모진 말들은 바로 지난주 일이었어도 곧바로 잊곤 합니다.

기억은 온전하지도 않습니다. 인지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박사는 있을 수 없는 기억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당한 비율로 나타나는 것을 디즈니랜드 실험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잘못된 기억”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사람들은 기억이 녹음기 같다 생각하지만” 사실은 “기억은 위키피디아 같아서 언제나 수정이 가능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기억이 불완전하다면 우리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은 그때그때의 흔적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위급한 전쟁 중에도 하루하루를 일기로 남긴 불멸의 영웅과 같이, 그림 한 점을 팔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동생에게 수 많은 편지를 남긴 천재 화가와 같이 각자의 오늘을 남기는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부터 무엇인가를 남겨보는 것이 어떨까요? 다만 여기서도 ‘무엇인가’가 내 인생의 조각인가 혹은 그날의 매상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출발점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위해 살고 있는가, 아니면 빨리 해치우고 공을 차러 나가려는 초등학생의 숙제처럼 급급히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지점에서 분기되는 것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