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간호사에 이민 빗장 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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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이 외국 간호사들에게 문을 활짝 열고 있다. 미 상원은 곧 외국 간호사에 대한 이민 쿼터를 없애는 법을 제정할 예정이라고 24일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간호사 자격과 영어 실력을 함께 갖춘 외국인의 이민을 대폭 허용하겠다는 뜻이다. 9.11테러 이후 이민 문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지만 유독 간호사들에겐 빗장을 확 연 것이다. 이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간호사 기근 현상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선 11만8000명의 간호사가 부족한 상태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2020년엔 무려 80만 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미국에 간호사 양성기관과 교수 요원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 간호사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병원에서 일하는 게 훨씬 수입이 많다. 자연 학생을 가르칠 만한 전문 지식을 갖춘 인력들이 박봉인 교직을 기피하는 바람에 간호학교가 교수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교 증설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미국에선 간호사가 크게 부족하지만 사실 간호학교 지원자는 충분하다. 지난해 간호사 양성기관에 지원했다가 자리가 없어 입학하지 못한 사람이 15만 명이나 된다.

미국은 결국 해외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취업.이민 형식으로 자격을 갖춘 외국 간호사들을 대거 초빙한 것이다. 이 같은 기류를 타고 아시아.아프리카 각국의 간호사들이 대거 미국으로 향했다. 특히 영어에 능통한 필리핀과 인도 출신이 가장 많았다. 지난해 필리핀에서 4594명, 인도에서 2330명이 미국의 간호사 자격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간호사에 대한 인식도 좋다. 최근 미국 뉴욕주의 한 병원이 앞으로 5년 동안 한국으로부터 1만 명을 인턴 간호사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을 정도다. <본지 4월 14일자 참조>

그러나 미국이 간호 인력을 대거 초빙해 간 나라에선 적잖은 사회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으로 가장 많은 간호 인력이 빠져나간 필리핀에서 특히 심하다. 필리핀 개인병원협회(PHA)에 따르면 간호사 부족으로 1987년 이래 687개 병원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연봉 2000달러를 받는 초임 간호사들이 미국에 가면 18배인 3만6000달러를 받을 수 있다. 임금 차가 이렇게 크다 보니 필리핀에선 일부 의사가 간호사 자격증을 새로 딴 뒤 미국으로 이주하는 사례까지 나타나는 실정이다.

양질의 간호사들을 미국에 빼앗겨 온 나이지리아.케냐 등 일부 아프리카 국가는 인력 유출과 관련, 미국에 사과와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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