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제국' 미국은 어디로] 로마제국과 미국은 닮은 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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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은 당시에 가장 잘 훈련받고 가장 예산을 많이 쓰며 최신무기로 무장한 병사와 군단을 가진 초강력 국가였다. 현재 미국의 군사예산은 미국 다음으로 군사예산이 많은 9개국 예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도 많으며, 지구 어느 곳에든 번갯불 같은 속도로 군대를 배치할 수 있다.

로마제국 경영교훈 제1조는 군사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었다. 세계가 제국의 힘을 알고 이를 두려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로마는 '콜로세움의 검투'라는 그 시대에 맞는 선전기술을 동원했다.

지금 미국에서는 미국의 군사작전을 24시간 현장중계하는 TV채널과 할리우드 영화들이 같은 노릇을 하고 있다. 로마제국에서 배운 또 하나의 교훈은 기술체계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는 일이다.

로마인들에게는 놀랄 만한 속도로 군대와 보급품을 옮길 수 있게 했던 로마가도가 있었다. 로마가도가 지금은 정보고속도로 형태로 등장했다.

로마는 전쟁과 정복을 통한 '강한 제국주의'와 문화와 정치를 통한 '부드러운 제국주의'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로마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정복은 창 끝에서 온 것이라기보다는 피정복국가 국민의 혼을 빼앗는 데서 왔다. 지금 미국은 토가(고대 로마시민이 입었던 겉옷)와 검투 대신 스타벅스와 코카콜라, 맥도널드와 디즈니를 제공하고 있다.

제국 지배에는 힘을 행사할 필요 없이 친미정권을 동원한 원격조종 통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란에 팔레비가 있고, 칠레에 피노체트가 있는 한 미국은 식민지를 경영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로마도 그랬다.

대표적인 예가 기원후 1세기 남부 잉글랜드를 통치한 토기두브누스왕에 의한 대리통치였다. 그는 잉글랜드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나 로마에서 공부했으며, 로마 유학을 마친 뒤 서섹스로 돌아와 친로마 괴뢰정권을 세웠다.

지금 워싱턴의 엘리트 사립학교들이 친서방 아랍국 왕들과 남미 및 아프리카의 미래 대통령들로 가득 차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로마도 9.11과 같은 일을 겪었다. 소아시아 폰투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왕은 기원전 80년 영토 내의 모든 로마인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때 학살당한 로마인이 8만명에 달한다. 이 사건으로 로마는 말할 수 없이 큰 충격을 받았다.

과거를 신화로 만드는 일에서도 로마와 미국은 닮았다.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 등 건국의 아버지들을 영웅적 거인으로 묘사하는 등 미국은 역사를 신화로 만들고 있다. 로마도 영웅들로 가득찬 제국의 신화를 창조했다.

조너선 프리드랜드 영국 가디언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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