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는 대나무만 먹고 섹스에 관심 없다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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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호 31면

책 속으로

오해의 동물원

오해의 동물원

오해의 동물원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곰출판

하이에나에게서 고기 앗는 사자 #굶은 동료와 피 나누는 흡혈박쥐 #인간은 동물을 얼마나 알고 있나

“하마는 부러진 갈대의 날카로운 밑동에 몸을 눌러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린다.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면 병들었던 몸의 고통은 사라진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이자 자연과학자인 대(大)플리니우스가 백과사전인 『박물지』에서 묘사한 하마의 행동은 이렇게 요약된다. 그는 피를 뽑아 병을 치료하는 방혈(防血) 요법을 하마가 최초로 개발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대 과학의 설명은 다르다. 하마의 거죽에서 배어 나온 액체는 피가 아니라 특별한 분비샘에서 만들어진다. 이 진액은 자외선 차단제에다 항균제, 곤충퇴치제 역할까지 한다.

동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뱀장어가 짝짓기나 알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진흙에서 자연 발생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유럽뱀장어는 최대 깊이가 7000m에 이르는 대서양 사르가소 해(海), 즉 북대서양 바하마 제도의 동쪽 바다에서 번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동아시아뱀장어는 마리아나 제도 인근에서 산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연사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진행자인 저자는 책에서 하마·뱀장어 등 13가지 동물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오해를 하나하나 풀어헤쳤고, 최신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편견을 바로잡았다.

동물에 대한 오해는 무지 때문만도 아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중세 기독교 사회를 거치면서 동물에 대한 허황한 믿음이 쌓인 탓이다. 동물을 인간과 동일시하려는 충동, 동물의 행동을 인간의 속성에 비추고 여기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시도가 진실을 호도했다고 저자는 따끔하게 지적한다. 근대에 와서도 부실하거나 잘못된 관찰·실험이 오해를 낳기도 했다.

남미에 사는 나무늘보에게 사람들은 ‘나태하고 무능한 동물’, ‘진화의 역사에서 실패한 동물’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나태는 기독교에서 정한 일곱 가지 대죄(大罪) 가운데 하나여서 나무늘보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한 시간에 300m 정도 이동하는 나무늘보는 오히려 그 나태한 천성 때문에 검치호랑이·털매머드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영양가 없는 나뭇잎을 먹는 대신 에너지를 적게 쓰는 쪽을 택했다. 열대에서 두꺼운 코트를 입고 사는 것도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아프리카 초원의 하이에나는 겁쟁이이고 비겁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점박이하이에나가 사자가 사냥한 고기를 훔치는 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오해다. 점박이하이에나에게서 죽은 고기를 더 많이 훔치는 쪽은 오히려 사자다.

중국을 상징하는 판다. 순진한 이미지와 달리 거친 성관계를 좋아한다고 한다. [중앙포토]

중국을 상징하는 판다. 순진한 이미지와 달리 거친 성관계를 좋아한다고 한다. [중앙포토]

저자는 대나무 먹는 데만 골몰하고 번식에는 무관심하다는 판다의 이미지도 인간의 실수가 빚은 오해라고 강조한다. 야생 판다는 거친 성관계를 좋아하고, 고기 맛도 아는 훌륭한 생존자라는 것이다. 동물원 판다가 짝짓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조바심을 냈지만 사실은 같은 수컷 두 마리였거나, 암컷 두 마리였다. 한때 판다는 너구리에 가까운 종으로 알려졌지만, 유전자 분석 결과를 통해 곰으로 밝혀졌다. 판다가 줄어드는 것도 인간이 서식지를 파괴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박쥐를 흡혈귀와 연결 지으며 두려워하지만, 전체 박쥐 중에서 피를 먹는 것은 3종에 불과하다. 흡혈박쥐는 이틀 연속으로 먹지 않으면 굶어 죽는데, 배를 채우지 못한 동료를 위해 피를 게워내 먹일 정도로 너그러운 동물이다. 반면 사람들은 박쥐에게 못 할 짓을 했다. 어떻게 해서 어둠 속에서도 부딪히지 않고 날아다니지를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박쥐의 눈을 파내고, 귓속에 시멘트를 들이붓기도 했다. 2차대전 때 미국에서는 박쥐에게 소형폭탄을 매달아 일본에 침투시키려는 연구도 했다.

이처럼 동물에 대한 편견이나 동물을 원하는 목적에 활용해도 된다는 생각의 바탕에는 인간의 오만함이 깔려있다. 하지만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듯이 인간의 도덕적 잣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한다고 해서 동물의 잘못은 아니다. 동물은 나름대로 그렇게 진화했고, 그렇게 적응해 살아왔을 뿐이다.

사실 무지와 편견에서 오는 오해와 미신은 지금도 계속된다. 이 서평 또한 새로운 오해를 보태는 것은 아닐까 염려도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옛사람들의 편견을 한눈에 보여주는 다양한 그림과 꼼꼼한 찾아보기(색인)는 이 책을 곁에 두도록 만드는 매력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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