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싸우면 딴나라가 좋아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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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남북한이 싸우면 다른 나라가 좋아합니다. 같은 조선인민이 상호존중·양보하고 자유스럽게 왕래하며, 특히 경제적으로 잘 어울려 점차적으로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한국전 당시 북한의 첫 해외 유학생의 일원으로 헝가리에 갔다가 헝가리인 의사와 결혼, 근4O년간 이곳에서 살고있는 이복남 여사 (60) .
현재 부다페스트에서 꾀 큰 병원인 칼라이 에바 코라즈병원의 실험실 과장으로 있는 이 여사는 지난12일 부다페스트 시내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기자를 만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처음으로 털어 놓았다.
『그 동안 남북한의 변화를 어느 정도 아느냐』는 질문에 『잘 모르고 알 수도 없었다』 고 한 이 여사는 『다만 북한은 듣지 않아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이 간다』고 했다.
과거 헝가리 당국이 발간한 외국 소개지도에 조선은 북조선만 표시하던 헝가리가 작년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국제관광총회 때는 남조선만 표기한 것이 희한한 변화라는 것이 이 여사의 느낌이다.
함남 함주군 신성리가 고향인 이 여사는 일제 때 함흥에서 숙명여자학원이라는 소학교를 졸업한 후 함흥의 대법원 간호학교에 들어갔다. 여기서 3년간 이수한 후 규정에 따라 3년간의 의무복무를 하던 중 45년 함흥의전이 설립됐다.
『의무복무 중이라 의전에는 갈 수 없었는데 당시 함흥의대 외과과장이 저를 잘 보아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남의 도움을 받았읍니다. 그 외과과장은 남조선으로 내려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49년 함흥의전을 졸업한 이 여사는 바로 북한권력층 간부들이 이용하는 평양특별병원에서 근무하게 된다.
이 여사는 당시 최고 인민위 상임위원회 위원장 (이름은 기억 안 난다고 함) 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일을 맡았고, 다른 동기생 7명도 비슷한 일을 했다. 그러다 6· 25가 터지자 이 여사는 후방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했다.
전쟁중인 51년 그녀의 인생에 큰 계기가 생겼다. 북한정부가 실시한 유학생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북한당국은 소련으로 가 아무거나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라고 하더군요. 나는 의학을 공부하겠다고 고집했죠. 그랬더니 당시 공산권에서 의학이 유명했던 헝가리로 보내더군요. 남자가 20명이었고 여자는 저 혼자였습니다.』
52년1월 헝가리에 와 그해 9월까지 어학연구소에서 헝가리 말을 배웠다. 곧 세멜 베이스 의대에 입학 해 공부하면서 북한대사관이나 관계자들의 헝가리 어 통역을 맡아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중 55년 또 한번 계기가 닥쳐왔다.
북한대사관이 한국전에 참전한 헝가리인사들을 위해 베푼 연회의 통역으로 갔다가 부군이 될 「케르테츠· 예뇌」씨를 만난 것이다. 기혼자인 「케르테츤씨는 헝가리 내무성소속 의사로 한국전에 참가했다가 53년 귀국 때 북한출신 고아를 한 명 데리고 왔었다.
헝가리의거가 발생한 56년 그 고아가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해 「케르톄츤씨 부부는 이 여사에게 설득을 부탁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자주 만나게 됐다.
그러다가 이듬해 헝가리인 부인이 불의의 전기사고로 죽자「케르테츤씨는 이 여사에게 청혼을 해왔다.
그러나 북한당국이 이를 허용하지 않아 이 여사는 큰 좌절을 겪고 만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비련의 아픔을 간직한 채 58년 세멜 베이스 의대를 졸업하고 북한으로 돌아가 흥남비료공장병원에서 근무하게됐다.
이 여사를 못 잊은 「케르테츤씨의 호소는 필사적이었다. 그는 헝가리 고위당국자에게 결혼성사를 간절히 호소했다.
이 호소가 받아들여져 59년5월 평양을 방문한 당시 「뮤니히· 훼롄츤 수상은 김일성에게 이들의 결혼허가를 부탁했다.
실로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결합하게 됐다. ·
이 여사는 그해 7월 헝가리로 돌아올 수 있었고 8월 결혼에 골인했다. 그후 그녀는 모교에서 병태심리학과 교수로 일해오다 지난80년 퇴직해 다시 같은 해 남편은 지병으로 사망했고 현재는 혼자 살고있다.
『결국 타인의 도움, 기묘한 인연, 저 자신의 노력으로 이런 인생을 살아왔읍니다.』
이 여사는 『함흥의전에 다닐 때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상당수가 남조선으로 내려갔다』 면서 『이름은 기억이 잘 안나나 생각은 많이 난다』고 했다.
정치문제로 화제를 옮기려하자 이 여사는 『정치는 정치 꾼 들이 알아서 할일 아니냐』며『지도자가 영리해야하고, 우선 조선인들을 세계에 내보내 공부를 하게 한 뒤 · 조선에 봉사토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헝가리의 사회상에 대해 그녀는 『1년여 전에 헝가리를 다녀간 인민들이 현재의 헝가리모습을 보면 뭐가 뭔지 잘 모를 정도로 이곳엔 개혁의 바람이 불고있다』 고만 언급하고 자 세한 얘기는 피했다.
그러면서 『남조선과 헝가리간의 경제관계가 잘 이루어져 헝가리 인민들의 생활이 향상됐으면 한다』 고 덧붙였다.
『과거의 나쁜 일은 다 드러나지요. 그리고 지나간 다음 어떤 일이 나빴다고 하기는 쉬운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잘해야 한다는 게 인생관입니다.』
이 여사는 『지금까지의 인생에 아쉬운 점이 없느냐』고 묻자 『아직까지 뭔가 잘못되고 불행한일은 없었다』고 말하고 『과거도, 미래도 의식하지 않고 현실을 유쾌히 살아왔다』며 환하게 웃었다. <부다페스트=안희창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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