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 쟁취한다는 세태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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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해 복많이 쟁취하십시오』
요즘엔 이런 농담반 진담반의 인사가 유행한다던가.
새해 인사치고는 좀 살벌하긴 해도 요즘의 세태를 이만큼 잘 드러내는 말도 드문 것 같다.
대화와 협상은 사전 속에나 있는 말로 접어두고 대번에 투쟁이요, 걸핏하면 농성이나 시위인 요즘의 세태를 잘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새해 인사까지 나오는 마당에 유독 이 땅의 금융관계자들이 연초부터 한데 모여 서로의 속을 털어놓고 거리를 좁혀보자는 자리를 마련해 주목을 끌고 있다.
16∼21일 1주일간 신한은행 연수원에서 재무부·한은·각 금융기관·기업·학계인사들이 함께 먹고 자며 가진 합동토론회가 그것이다.
사실 금융분야는 우리 경제의 여러분야 중에서도 가장 뒤처져 있는 분야중의 하나이고 따라서 그만큼 진보적이고 발전적인 「변신」이 가장 요구되고 있으면서도 재무부나 각 금융기관 특유의 보수성 때문에 금융기관 서로 간에, 또는 실물사이드와의 관계에서 적지 않은 마찰을 빚고있다.
또 금리자율화니,금융자율화니,금융산업개편이니하는 중요하기 이를데 없는 일들이 이제 더 이상 미뤄질 수 없을 만큼 몰리고 몰린 상태에서 한꺼번에 닥치고 있음에도, 서로간의 이해득실과 「영토」를 의식해 자칫 대사를 그릇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더우기 지난해 경험했듯 한은법개정과 같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 백년대계의 「주춧돌」 을 놓아야 하는 일까지도 재무부와 한은의 감정싸움에 가까운 공방, 줏대없는 정당들의 정치쟁점화, 가두로 나선 서명운동 등으로 점철되기도 했다.
들리는 얘기로는 요즘 한은과 재무부의 간부들은 이제 지난해와 같은 전철을 밟지 말고 서로의 협상과 각 기관내의 의견통일 등을 통해 오는 3월 국회 때에는 어떻게든 멋진「작품」을 하나 만들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번 토론회도 그 같은 분위기와 무관한 것이 아님은 너끈히 읽을 수 있는 일이다. 「복도 쟁취하라」는 요즘의 세태에서 한은과 재무부가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정말로 모범적인「작품」을 하나 만들어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김수길 <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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