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바로크 풍의 전시도시 평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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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주 평양을 방문한 북한 경제참관단 일행의 감탄사였다. 왕래하는 자동차가 드문 넓은 길에 신호등조차 거의 없어 교통 체증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로 많은 시민이 걸어다니는 보행 중심의 도시로 여겨졌다. 다만 2~3 량씩 연결해 운행하는 전차와 드물게 마주치는 이층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은 이용하는 시민들로 콩나물시루 같은 모습이었다. 평양 지역의 인구는 250만 명으로 약 100만 명이 도심부에 거주한단다. 평양과 약 30㎞ 떨어진 남포를 잇는 왕복 10차로의 고속도로에서도 참관단이 지나는 동안 10여 대의 차량만 마주쳤을 뿐이다.

평양은 도로뿐 아니라 주택과 편익시설.공공건물 등 도시의 모든 부분이 철저하게 계획된 완벽한 신도시다. 특히 평양 도심부는 1980년대 평양 대개조계획에 따라 세계를 향한 전시(展示)도시로 재탄생했다. 따라서 을밀대나 보통문 등 몇 가지 유적을 제외하고는 평양이 고구려에서부터 이어져 온 역사도시란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평양 도심부는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주체사상탑과 김일성 광장 및 인민학습당을 중심 축으로 대칭을 이루는 바로크적 도시 경관의 전형으로 거듭났다.

모든 도로와 광장.공원.건물 등 도시 시설들은 시민들의 수요보다는 상징성 등 물리적인 형태에 초점을 맞춰 건설됐다. 김일성 수령의 70회 생일을 기념해 82년 건설된 개선문은 60m 높이에 화강암 1만1000t과 시멘트 2만t이 사용됐다는 설명이었다. 같은 때 지어진 주체사상탑은 170m(약 50층) 높이로 꼭대기에 설치된 전망대에서는 온 평양 시내를 조망할 수 있으며 70회 생일을 기념해 70개의 기단, 70송이의 꽃 등으로 장식됐다. 또 89년 세계청년학생 축전에 대비, 현대적 도시 모습을 갖추기 위해 건설된 광복거리는 길이 5.4㎞에 폭 100m로 주변에 30~40층 안팎의 고층 아파트 수십 동을 배치했다.

한편 92년 이후 14년째 공사가 중단된 105층짜리 유경호텔 건물은 다른 의미에서 평양을 상징하는 구조물이다. 피라미드 형태의 300m가 넘는 높이로 인해 평양 주변 어디에서나 보이는 이 건물은 멀리서 보면 엄청난 규모의 탑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마감되지 않은 콘크리트가 부식해 가는 상태로 방치돼 있다.

화려한 재료나 대규모를 자랑하는 웅장한 기념비적 건축물과는 달리 일반 시민들의 아파트와 생활 편익시설들은 단순한 회색 콘크리트나 시멘트 블록 건물들로 이뤄져 있다. 이로 인해 평양시 전체의 모습은 대체로 무채색.무표정이다. 특히 그 같은 무표정에는 '남새상점' '안경제작소' 등 작고 인지도가 낮게 붙여진 간판들도 한몫한다. 경쟁적으로 소비자를 끌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 특별히 눈에 띄는 간판이 필요 없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같은 간판들이 도시를 무표정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지나치게 요란해 오히려 도시 미관을 해치는 서울의 간판들이 대비됐다.

이 같은 평양은 계획이 어디까지 도시의 모습을 결정해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살아 있는 사례로 다가왔다. 사람들의 삶이 도시의 모습을 결정하게 되면 무질서한 마구잡이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완벽하게 계획된 도시는 거꾸로 시민의 삶 자체를 통제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개인의 욕망이 강조돼 조화와 질서가 부족한 도시개발 문화와 지나치게 통제된 계획으로 인해 생동감을 잃어버릴 수 있는 계획도시 가운데의 어디쯤이 적절한 절충점인지를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행정중심복합도시 등 각종 도시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같은 적정선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임을 이번 평양 방문은 다시 한번 깨우쳐 줬다.

신혜경 도시건축전문기자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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