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에도 끝까지 남아 여객기 이륙시킨 관제사…끝내 목숨 잃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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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술라위시 섬 팔루 지역에 쓰나미가 덮쳐 400여명이 사망했다 [EPA=연합뉴스]

인도네시아 술라위시 섬 팔루 지역에 쓰나미가 덮쳐 400여명이 사망했다 [EPA=연합뉴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지진 발생 당시, 팔루시의 한 공항 관제탑에서 마지막 여객기를 이륙시키다가 목숨을 잃은 관제사의 사연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 관제사는 여객기가 무사히 이륙할 때까지 관제탑을 지키다가 대피하지 못하고 피해를 입었다.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관제사 안토니우스 구나와아궁(21)은 지난 28일(현지시간) 오후 6시2분쯤 무티아라 SIS 알-주프리 공항 관제탑에서 근무 중 지진을 감지했다.

당시 팔루 공항 활주로에는 인도네시아 저가항공사 바틱 항공 소속 여객기 6231편이 활주로를 달리고 있었다.

지진이 감지되자 직원들은 밖으로 대피했지만, 아궁은 끝까지 관제탑을 지켰다.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운 여객기가 관제탑의 지시를 기다리며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흔들리는 관제탑에 혼자 남아 여객기가 완전히 이륙할 때까지 조종사 등을 가이드해준 것으로 전해졌다.

아궁의 희생 덕분에 여객기는 무사히 이륙했다. 여객기가 무사히 하늘에 떠오르는 것을 확인한 아궁은 곧바로 관제탑을 나섰다.

하지만 대피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흔들리던 관제탑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출입구가 막혀 탈출할 수 없었다.

결국 아궁은 관제탑 4층에서 밖으로 뛰어내렸다. 다리가 부러지고, 장기가 손상된 아궁은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상태가 심각했다.

아궁은 헬리콥터를 이용해 더 큰 의료시설로 옮겨질 예정이었지만, 헬리콥터 도착전 숨을 거뒀다.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자 인도네시아 국영 항공관제기구 에어나브(AirNAV)는 아궁의 희생을 기리며 그의 직급을 두 단계 올려주기로 했다.

에어나브의 대변인인 요하네스 시라잇은 "아궁은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며 "하지만 그는 다른 수백 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

한편 지진 당시 팔루 국제 공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으로 이륙한 여객기가 목적지인 술라웨시주 남쪽에 위치한 마카사르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당시 여객기를 조종한 리코세타 마펠라 기장은 "어쩐지 급히 이륙해야 할 것 같아 평소와 달리 신속한 허가를 요청했다"며 당시 상황을 증언한 바 있다.

마펠라 기장은 당시 이륙 순간 땅이 흔들렸고, 이륙한 뒤 팔루 관제탑과 통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밝혔다.

팔루 국제공항 관제탑 역시 지진으로 무너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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