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 여성 '보모 취업'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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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학원강사 출신인 김호연(25.여)씨는 2월부터 미국 콜로라도주 라파예티시에서 살고 있다. 그곳에서 두 살배기 남자아이 콜린을 보살핀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시도 콜린 곁을 떠나지 않는다. 축구나 수영 수업을 함께하는 건 물론이고 도서관이나 박물관, 실내 놀이터도 데리고 다닌다. 낮잠을 재우고 간식을 챙기는 것도 그의 몫이다.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한 한은경(24.여)씨는 다음달 미국 뉴햄프셔주 로체스터시로 간다. 한국에서 입양된 9살 케빈과 7살 내서니엘을 맡을 예정이다. 그는 "컴퓨터프로그래머와 대학교수인 양부모가 한국에 대해 많이 알려주길 원한다"고 전했다.

두 사람 모두 영어 때문에 보모를 자처한 케이스다. 1년간 주당 45시간씩 현지인 가정에 머물면서 아이를 돌보는 미국 '오페어(au pair)'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139달러 정도의 주급도 받는다.

두 사람은 "이 프로그램은 일반 어학연수 프로그램과 달리 돈을 벌면서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며 "현지 가족과 함께 살면서 현지 문화에 푹 빠져 지낼 수 있다"고 전했다.

오페어 프로그램이 젊은 여성 사이에서 알음알음으로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애초 프로그램이 도입된 건 1998년. 한 여행사가 미국의 중개 업체와 손잡고 매년 80여 명을 내보냈다. 그러다 최근 오페어 취급 업체가 대여섯 곳으로 늘면서 오페어 숫자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대행사인 스톱바이 양원창 대표는 "지난해 30명을 보냈는데 올 목표는 80명"이라며 "오페어 프로그램이 널리 알려지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미국에 체류하는 한국인 오페어는 250명(전체 2만여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 "1년간 준비한다"=생면부지 남의 아이를, 그것도 외국인 자녀를 키우는 일이다 자격이 까다롭다. 18세부터 26세까지 여성이 대상이다. 기본적 회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또 200시간 이상 아이를 돌본 경험도 있어야 한다. 영어 인터뷰와 심리 테스트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 이선화(21.경북대 영문과 3년)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유치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200시간 기록을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영어학원에도 다녔다. 인터넷 포털엔 10여 곳의 오페어 관련 모임이 결성돼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신발끈여행사 이은미씨는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미리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중도 포기자도 많다"=김호연씨는 "힘들어서 돌아가는 친구가 많다"며 "또 열 명에 예닐곱 명은 다른 가정을 찾아간다"고 전했다. 보스턴에서 2년간 오페어로 지냈던 송미진(26)씨는 "문화적 차이나 향수병 등으로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며 "굳은 마음을 먹고 철저히 대비하고 오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고정애 기자

◆ 오페어는=1890년대 영국 소녀들이 프랑스 가정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프랑스어를 배운 데서 시작됐다고 한다. 요즘엔 현지인 가정에서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으며 아이를 돌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미국 국무부에서 오페어에겐 문화교류(J-1)비자를 발급한다. 12개월은 오페어로 일하고 1개월간은 여행할 수 있다. 주당 3시간씩 대학에서 수업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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