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결의 후 비전투병 보내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김수환(金壽煥)추기경과 강원룡(姜元龍)목사, 송월주(宋月珠)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19일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찾아 오찬 간담회를 했다. 이라크 추가파병을 둘러싼 국론 분열로 어수선한 가운데 가톨릭.기독교.불교의 상징적 지도자 3인은 1시간30분 동안 속세의 지도자인 盧대통령의 국정운영 문제점을 지적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우선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해 이들은 양자택일보다는 '유엔 결의하의 비전투병 파병'이라는 절충안을 공통적으로 제시했다. 강원룡 목사는 "(미국의 공격시)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도 않았고 테러단체인 알 카에다가 후세인 대통령과 연계됐다는 증거도 없다"며 "월남전 파병 때도 반대했지만 이번 이라크 추가파병은 더 명분이 없다"고 했다. 姜목사는 그러나 "정부가 그렇게만은(파병 거부) 할 수 없을 것이니 양자택일은 말아달라"며 "유엔 결의 하의 다국적군 속에 있는 비전투병으로 절충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유엔 평화유지군 소속의 비전투병이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송월주 전 원장도 "공감"이라고 했다. 현재 기류는 유엔 결의 하의 다국적군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盧대통령은 이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것은 없고 신중하게 판단해 나가겠다"고만 답변했다.

현 정부의 대언론 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宋전 원장은 "대화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며 "일부 언론에 대해 일희일비 안 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金추기경도 "무엇보다 비판세력을 품어야 한다. 품는 게 좋겠다"며 "언론사주도 만나 풀 것은 풀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다. 盧대통령은 "언론에 대해서는 원칙적 얘기만 해왔다"며 "신중하게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盧대통령은 "포용이란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것인데 대통령은 강자가 아니다"라며 "특권은 인정치 못하겠다"고 답했다.

姜목사가 다시 "정부보다 무서운 게 언론"이라며 "횡포를 바로잡는 건 맞지만 대통령이 앞에 나서지 말고 제도적으로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 盧대통령은 "연구해 보겠다"며 "5년간 꿋꿋하게 가는 정권도 필요하며 그러면 잘못된 관행도 바로잡힐 것"이라고만 답했다.

노사 문제 관리 등 盧대통령의 리더십도 거론됐다. 姜목사는 "우리나라의 1대가 이승만 정권, 2대가 군사정권, 3대가 양김(兩金)정권"이라며 "이 정권은 4대 정권인데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운을 뗐다. 盧대통령은 "일의 어려움보다는 사회적 갈등 과정에서 분신.자살 등 극단적 방법을 택하는 데 마음의 부담이 있다"고 토로했다. "게임의 규칙과 시스템 바깥에서 극단적 요구가 있는데 이해는 가지만 수용은 못 하겠고 그래서 속이 탄다"고도 되뇌었다.

宋전 원장이 "정권 초기 노동문제가 불안했는데 철도노조와 화물연대 파업 처리 과정에서 법과 원칙의 테두리로 처리해 국민이 안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盧대통령은 "화물연대의 경우 과거 정부의 잘못도 있었다"며 "(노동자의)이익을 지켜줄 단체가 전무했고 정부와의 대화창구도 닫혀있고 온순한 사람을 독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盧대통령은 "달랠 때와 매를 들 때의 기준이 있다"며 "최선을 다해 대화하되 명백히 선을 넘을 때는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金추기경은 최근 자신이 盧대통령 정부가 불안하다고 비판했던 것에 대해 이날 "죄송하다"고 말했으며 盧대통령은 "추기경님 말고도 그런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종교지도자들은 이날 사형제 폐지와 감호제의 개선을 요청했으며 盧대통령은 "법무부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