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부 어머니께 모든 영광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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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모든 영광을 파출부 일을 하며 어렵게 뒷바라지 해주신 어머님께 돌리겠습니다.』
서울대 화공과에 응시, 학력고사 3백25점으로 전체 수석 합격의 영예를 안은 이종진군(17·서울대 신고 졸)은 잇따라 걸려오는 축하전화를 받으며 어머니 이공순씨(45)의 거친 손을 꼭 잡은 채 눈물을 글썽거렸다.
어머니 이씨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자랑스런 아들의 볼에 얼굴을 비벼대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86년 화물 트럭으로 채소 장사를 하던 아버지 이송헌씨(49·무직)가 교통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쳐 몸져누운 뒤 가족의 생계와 3자녀의 학업 뒷바라지를 위해 온갖 궂은 일을 쫓아다니며 파출부 생활을 해온 각고의 3년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서울 천연동 금화산 산꼭대기 금화아파트 26동005호.
1.5평짜리 안방에는 이군이 고교시절 학교에서 받은 우등 메달 10여 개가 자랑스레 걸려있고 마루까지 방으로 개조한 10평짜리 허름한 시영아파트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달동네 이웃들로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또순 엄마 큰아들이 전국 장원을 했대요.』 최근 들어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이 줄곧 수석자리를 차지해온터라 이웃들도 덩달아 이군의 수석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야말로 『아들의 사기가 떨어질까 봐 쑤시는 허리통증도 내색조차 못했다』는 아버지와 『남몰래 코피를 쏟으면서도 아들 도시락 반찬을 위해 매일 일을 나갔다』는 어머니의 정성이 합쳐져 빚어낸 영광이었다.
『시험을 잘 치르기는 했으나 수석은 뜻밖이에요. 열심히 공부해 세계 제일의 과학자가 되겠습니다.』
지난해에도 같은 과에 응시했다가 불합격의 아픔을 맛본 종진 군은 2지망으로 합격한 임산가공학과 진학을 포기, 재수생활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도시락 2개를 싸들고 종로학원에 나가 강의가 끝난 뒤에도 교실에 남아 밤10시30분까지 교재 위주의 철저한 복습을 했다.
『막바지 한 달을 남겨두고 비교적 약한 영어과목에 치중한 것이 주효한 것 같습니다.』
이군은 밤11시에 귀가하면 라면으로 저녁을 먹은 뒤 비좁은 짐을 피해 같은 동 205호에 사는 외삼촌 이재석군(27·군산대 경영4)의 공부방에서 새벽2시까지 함께 공부했다.
대신고 후배인 동생 창진군(16·1년)과 동명여중 2년 경련양(14) 등 두 동생도 모두 학교에서 상위권을 차지해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했다는 이군은 여기저기 부르튼 입술을 어루만지며 떨어진 동료 입시생들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김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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