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사회의 자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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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성탄절을 맞는 풍속이 달라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크리스마스 전후의 풍경은 거리를 뒤덮은 휘황찬란한 대형 장식물과 요란한 캐럴의 물결로 공연히 젊은이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모두가 거리에 몰려나와 온통 법석을 떨게 했다.
그러나 이번 성탄절은 대부분의 교인들이 교회와 성당에서 보냈고, 시민들은 가족과 함께 조용히 집에서 보내 술집 등 유흥업소에도 손님의 발길이 뜸했다.
성탄절뿐 아니라 세모를 맞는 분위기도 건과 달리 차분하게 가라앉은 느낌이다. 망년회다, 송년모임이다 하여 온통 떠들고 마시고 하던 호화판의 낭비적 시속이 줄어들고 직장의 동료나 친지들끼리 오붓하게 모여 한해의 회포를 푸는 모임이 주류를 이르고 있다.
따지고 보던 지난날 공연스레 요란법석을 부린 것은 어쩌면 사회 구석구석에 괴고 쌓인 온갖 욕구불만이 한꺼번에 분출구를 찾아 쏟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런 단계를 넘어 민주사회, 성숙한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남이 하면 따라하는 그런 부화뇌동 적인 풍조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성탄절과 세모를 조용히 보내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이웃에 대한 관심이 예년보다 줄어든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모두들 즐거운 날에 많은 불우시설과 이웃들이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다 지쳐 춥고 쓸쓸하게 보냈다는 보도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번 성탄절에 보낸 기독교 지도자들의 메시지도 한결같이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고 있다. 굳이 성경구절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랑과 평화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사는 것은 축복된 삶임에 틀림없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밝고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자신이나 가족뿐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항상 따뜻한 눈길을 보낸다. 그래서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며 그들을 돕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성숙한 사회의 시민 됨이다.
그러나 반대로 불평과 불만에 가득 찬 사람들은 자칫 자기의 인생을 찌들고 옹졸하게 만들기 쉽다. 그래서 마냥 우울하고 짜증스러워 이웃에 대한 관심은 고사하고 자신마저 포기해 버린다. 그 결과 자신과 가정을 파괴하고 나아가서는 사회에도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
어떤 종교인은 감사하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일이 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하늘과 땅에서 받은 혜택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아보자. 1년 동안 가꿔 얻은 곡식과 모든 사람의 근면으로부터 이뤄 얻은 일상 생활품, 알게 모르게 이웃으로부터 받은 인정과 은혜 또한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어떤 것으로도 치를 수 없는 가장 값진 것임에도 우리는 잊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한해동안 정말 많은 것을 체험했다.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올림픽을 치렀고, 민주주의를 향한 대장정도 시작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노사의 갈등과 5공 비리의 청산을 위한 청문회 등 미증유의 경험을 했다. 모두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새 몇 장 남지 악은 캘린더를 다 넘기기 전에 우리는 조용히 이 해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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