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화학이야기

알칼리는 신비의 영약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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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본래 '알칼리'는 나트륨(소듐)이나 칼륨(포타슘)이 들어 있는 식물을 태운 재를 뜻하는 희랍어였다. 비누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에 우리 조상이 쓰던 잿물을 만들던 '재'가 대표적인 알칼리인 셈이다. 요즘의 알칼리는 조금 더 넓은 뜻을 가지고 있다. '알칼리족'이라고 하는 리튬.나트륨.칼륨과 같은 금속을 물에 넣으면 만들어지는 수산화물을 뜻한다. 칼슘.스트론튬.바륨 등의 알칼리 토금속의 수산화물도 알칼리라고 부른다. '가성소다'나 '양잿물'이라고 부르는 수산화나트륨(NaOH)이 대표적인 알칼리인 셈이다.

알칼리는 건조한 사막의 침출액이나 나무나 해초를 태운 재에서 얻었던 귀한 물질이었다. 요즘에는 광산이나 사막에서 채취하는 천연 소다회(탄산소다)를 변환시키거나 19세기 말에 개발된 기술을 이용해 대량으로 생산한다. 보통 알칼리는 물에 잘 녹는 흰색 고체이고 금속이나 유기물을 부식시킬 정도로 반응성이 크다. 알칼리는 유리.비누.세제.레이온.셀로판.종이.펄프 등의 제조에 꼭 필요한 산업 원료다.

대부분의 광고에서 '알칼리'는 수산화이온의 농도가 수소이온의 농도보다 큰 상태를 나타내는 '염기성'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의 체질을 '산성'과 '알칼리성'으로 분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람 혈액의 수소이온 농도는 인종.성별.나이에 상관없이 똑같다. 그렇지 않다면 링거액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수혈할 때 혈액형을 꼼꼼하게 따지는 병원에서도 링거액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을 사용한다. 실제로 우리 혈액의 수소이온 농도 지수(pH)는 누구나 7.4이고, 그 값이 0.2만 달라지면 생명이 위험해진다.

식품을 산성과 알칼리성으로 구분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그런 구분은 식품이 완전연소됐을 때의 부산물을 근거로 하는 것으로 알칼리 금속이나 질소 화합물이 많으면 알칼리성이라고 한다. 우리가 섭취한 식품이 몸속에서 모두 '연소'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화학적으로 산성인 것이 분명한 식초를 알칼리성 식품이라고 우기는 것은 정말 기막힌 일이다.

우리가 마시는 물도 화학적으로는 중성에 가까워야 한다. 정부에서 정한 마시는 물의 수질 기준에서도 수소이온 농도 지수는 5.8에서 8.5 사이가 돼야 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너무 심하게 산성이거나 염기성(알칼리성)인 물은 맛도 나쁘고, 실제로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알칼리 이온 음료'라는 광고는 '나트륨 양이온'이 녹아 있다는 뜻이다.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나트륨 양이온은 조금만 부족해도 심한 갈증이 생긴다. 땀을 많이 흘린 뒤 물을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는 것은 나트륨 이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는 소금을 조금만 먹으면 갈증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알칼리 이온 음료는 그런 소금물에 단맛을 내는 성분을 넣은 것이다. 실제로 알칼리 이온 음료는 화학적으로 산성이다.

알칼리가 건강에 좋다는 주장은 어감이 낯선 과학 용어로 신비감을 불러일으켜 부당한 이익을 챙기려는 얄팍한 상술일 뿐이다. 그런 상술에 속아 넘어가 금전적으로 손해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칫하면 무엇보다 소중한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과학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