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가수에게 2억원 준 팬…"돌려달라" 소송냈지만 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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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수가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중앙포토]

한 가수가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중앙포토]

이모씨는 2009년 가수 김모씨의 팬클럽 회원으로 가입했다. 김씨는 주로 라이브카페에서 활동하는 가수다. 이씨는 팬클럽 회원의 의무는 아니었지만 김씨에게 돈을 보냈다. 2010년 5월부터 2012년 5월까지 2년동안 이씨가 준 돈은 총 2억2500만원이 됐다.

이 돈이 문제가 된 것은 지난해 11월 이씨가 김씨를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다. 이씨는 "가수 김모씨가 음식점 인테리어 비용이 필요하다고 해 2억2500만원을 빌려준 것"이라며 이를 돌려달라고 했다. 실제로 가수 김씨는 이씨로부터 받은 돈을 자신이 운영중인 2층짜리 고깃집 인테리어 비용으로 썼다.

수원지법 전경 [사진 수원지법 홈페이지 캡처]

수원지법 전경 [사진 수원지법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법원은 이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수원지법 민사합의16부(부장 이승원)는 반 년 넘는 심리 끝에 지난달 8일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팬 이씨와 가수 김씨 사이에 차용증이 작성되지 않았고, 이 2억2500만원이 빌려준 돈이라고 인정할만한 자료도 없다"고 봤다.

어떤 돈의 성격을 두고 서로 의견이 갈려 민사 법정에 서게 되면, 소송을 제기한 쪽이 증명할 책임이 있다. 이씨의 2억2500만원이 김씨에게로 넘어간 것은 두 사람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그 돈은 준 게 아니라 빌려준 것'이라며 소송을 낸 것은 이씨다. 따라서 이씨는 그 돈을 왜 빌려준 것인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이씨와 이씨의 변호인은 재판부를 납득시킬 증거를 내지 못했다. "김씨로부터 이자 명목으로 돈을 받기도 했다"는 주장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2억2500만원을 지급할 당시 별도의 이자 약정이 없었는데도 이자를 받았다고 하는 주장은 모순"이라며 "(이씨가 이자로 받았다고 주장하는) 돈의 액수, 지급 시기 등에 비추어 이를 2억2500만원에 대한 이자로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노래방 마이크 이미지. 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 없음. [중앙포토]

노래방 마이크 이미지. 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 없음. [중앙포토]

재판부에 따르면 이씨는 김씨에게 '당신의 노래로 많은 위안을 받았다'며 팬클럽 가입 직후부터 고마움의 표시로 매달 20만원씩 후원을 했다. 김씨의 곡을 노래방 기기에 등록하기 위한 비용 1000만원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자신이 갖고있는 경기도 성남시의 291㎡(약 88평)짜리 밭을 김씨에게 준다는 증서를 쓰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이씨는 김씨에게 대가 없이 상당한 규모의 금전을 지급해왔음을 인정하고 있다"면서 "이런 사정에 비춰보면 이씨가 김씨에게 준 돈 2억2500만원이 빌려준 돈이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문제삼은 2억2500만원 역시 '빌려준 돈'이 아닌 '대가 없이 준' 돈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팬과 가수로 만난 이씨와 김씨가 법정에서 다투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서울고법에서 2심이 진행된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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