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의 저주' 이번에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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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1958년)에 브라질 대표로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로 평가받는 '축구 황제' 펠레. 그러나 매번 월드컵만 다가오면 그는 기피 인물이 된다. 그가 우승후보로 예상한 팀은 여지없이 초반에 탈락한다는 '펠레의 저주'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강팀으로 거론한 팀은 예외 없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거나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다. 가장 근접했던 때가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준우승한 것이다.

이 때문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국가들은 하나같이 펠레가 자기 팀을 우승후보나 강팀으로 거론하지 않기를 바라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펠레가 또 우승후보를 내놨다. "브라질이 최강팀이긴 하나 우승은 어렵다"면서 독일.프랑스.이탈리아.잉글랜드를 우승후보로 꼽은 것이다. 일부에서는 펠레가 '펠레의 저주'를 의식, 조국 브라질을 우승시키기 위해 일부러 유럽의 강호들을 우승후보로 거론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펠레가 국내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16강에 진출할 것"이라고 하자 국내 축구팬 사이에서는 "재수없다"는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 펠레의 꼼수? =펠레는 16일(한국시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프랑스가 이번 월드컵에서 일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와 잉글랜드도 우승후보로 꼽았다. 국내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는 개최국 독일의 우승 가능성을 점쳤다. 그러나 "브라질이 우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의 펠레도 비슷했다. 펠레는 프랑스와 더불어 아르헨티나.포르투갈을 우승후보로 지목했다. 그러나 브라질에 대해서는 "미드필드도 엉성하고 수비 경험도 없는 팀"이라며 악평했다. 펠레의 말은 '저주'가 돼 돌아왔다. 우승후보 세 팀은 모두 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했고, 브라질이 다섯 번째 우승컵을 안았다. 당시 루이스 스콜라리 브라질 감독은 "우승하고 싶다면 펠레가 하는 말과 반대로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 한국 팬들 "비관적으로 봐달라"=지난해 말 펠레는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6 월드컵에서 한국과 일본의 역할이 바뀔 것"이라며 "국제 경험에서 일본이 앞서 있다"고 말했다. 그의 전망에 한국팬들은 '환호'했다. 그런데 14일 국내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프랑스와 함께 16강에 진출할 것"이라고 전망하자 네티즌들은 "펠레의 저주도 모르느냐"며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2002년 대회 때 펠레는 4강전을 앞둔 한국을 두고 "브라질과 결승에서 만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 펠레를 위한 변명=콜롬비아는 94년 미국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1위로 본선에 올랐다. 월드컵 직전까지 28경기 연속 무패 기록도 세웠다. 당연한 우승후보였다. 프랑스는 2000년 유럽선수권대회(유로2000)를 제패했고,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였다. 객관적으로는 2002년 대회 우승후보였다는 말이다. 이번에도 "브라질이 우승하기 어렵다"는 전망은 그동안 유럽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선 언제나 유럽팀이 우승했다는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펠레는 50년 가까이 세계 축구계의 거물로 존재해 왔다. 일각에서는 "펠레의 저주는 그의 유명세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라고 평가한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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