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증만 굳힌 「일해 수수께끼」|5공 청문회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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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회5공특위가 한계에 부딪쳤다. 전두환씨의 권력남용, 정경유착 등을 추적해왔던 일해청문회는 14일 장세동(전청와대경호실장)·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양정모(구국제그룹회장) 씨의 3각 대질신문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지만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심증」만 좁혔을 뿐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하고 말았다.
앞으로 전씨를 상대로 한 청문회가 22일 잡혀있으나 현 상황으론 그의 불출석이 확실해 5공 특위는 지금까지의 활동을 기초로 위증확인, 고발대상자선정, 보고서작성 등 다음단계 정리작업에 착수한다.
이제까지 6차례 청문회 등을 통해 5공 쪽에선 일해를 전씨 퇴임 후 정계 원로로서의 역할과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위한 사적 활동무대로 등장시키려 했으나 결국 「바깥사정」(안현태씨 표현) 때문에 좌절됐음이 직·간접적 증거를 통해 상당부분 드러났다.
그러나 모금의 강제성, 최종 모금목표액의 설정, 정경유착, 재단목적의 변질 등 쟁점사항은 관계자들의 엇갈린 진술로 일해사유화를 딱 부러지게 뒷받침하지 못한 채 미진한 구석을 남겼다.
3각 대질 청문회에서는 세부적인 몇 가지 사항만 새롭게 확인했을 뿐 관계자들간의 상충된 증언을 한족으로 몰아 정리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
오히려 기금강제성 등 대목에선 돈을 거두는 쪽과 내는 쪽의 상반된 견해들이 뚜렷이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 진상규명에 다소 혼선을 일으키는 느낌마저 줄 정도였다.
물론 이제까지 밝혀진 일해사유화 변질과정의 증언 및 증거들이 3각 대질로 퇴색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기게된 것이다.
이날의 3각 신문은 청문회, 나아가 국회조사활동의 한계를 노출시켰고 전씨의 출석 없이는 진실규명에 더 이상의 진전이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역설적인 소득을 거둔 셈이 됐다.
크게 봐서 일해비리 추적은 지금까지 상당부분 밝혀진 것을 토대로 마감하느냐, 아니면 특별검사제추진 등 방향전환의 기로에 섰다고 할 수도 있다.
논란이 됐던 대목을 살펴보면 기금강제성에 있어 실제로 유형적인 압력을 찾지는 못했다.
기금을 제대로 안내 그룹이 해체됐다고 주장해온 양정모씨마저도 일해에 돈내는 데 구체적인 강압이 있었느냐는 대질신문에 『나한테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해 강제성 진술에 객관성 부여가 어렵게 됐다. 86년도 3차분은 『편안히 살기 위해 냈다』고 시류론을 폈던 정주영씨는 「정신적 강제성」이라는 설명을 달아 주관적 해석의 여지를 제공했다. 정씨는 여기에 『돈을 거두는 위치와 내는 위치에서 다를 수도 있다』고 설명, 지난번 사유화·강제성 등을 화끈하게 까발렸던 태도에서 후퇴한 인상이었다.
장씨는 『기금강제성이 있을 필요도 없고 하지도 않았다』는 종전 입장을 완강히 고수했다. 강제성 여부는 기업인들이 5공권력의 위압 앞에 알아서 처신했거나 적극적으로 반대급부를 노렸거나 하는 정황으로서의 증거이상을 얻지 못했다.
다음 모금목표액에 대해 돈 내는 기업소유주 쪽의 정주영씨와 돈 거두는 쪽의 전문경영인인 정수창씨의 진술이 완전히 엇갈려 숙제로 남겨졌다.
정주영씨는 『처음 1백억원이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 기업에 할당했다. 5백억원은 토의된 적도, 결정된 적도 없다』고 부인했으며 정수창씨는 『1년에 40억∼50억원의 경비가 든다는 최순달씨의 판단에 따라 그런 규모의 이자를 만들기 위해 역산해보니 5백억원이 책정됐다』고 했었다.
정주영씨는 특히 「86년1월 1년만 더 기금 거두는데 노력하자」는 자신의 일해회의록 발언을 정수창씨가 인용한데 대해 『나의 말을 두려워해 일해 측이 유리하게끔 만들었다』고 발언내용을 극구 부인해 문서조작시비까지 일으켰다.
모금목표액은 당초 재계 측과 충분한 합의가 없었다가 재단변질, 과잉의욕에다 지난번 정주영씨의 진술대로 『1백억원이 쉽게 모아지니까 생각이 비약한 것』으로 최순달씨 등 일해 실무진의 당초 구상을 전씨가 묵인하면서 커졌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고있다.
정경유착 대목은 현대그룹의 구서울고 부지를 구의동땅과 바꾸는 과정을 예로 들어 추궁했으나 정주영씨가 결코 특혜가 아니라고 단호히 부인하는 바람에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장씨와 정주영씨의 딱 부러진 엇갈린 증언대목이었던 성남의 정씨 땅 기부과정에 대해 정씨는 『장씨가 6억5천만원의 돈을 보여준 적도, 받겠느냐고 물어본 적도 없다』고 한 당초의 주장을 번복,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일해청문회는 청문회 정국을 통한 정치실험을 했다는 평가와 함께 증인들의 증언자세, 신문자의 태도에 여러 가지 과제를 계속 남겨주었다.
일해청문회가 이런 식으로 종결되면 5공 특위를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는 문제도 남는다.
5공 특위는 4개소위로 나눠 ▲1소위 새세대육영회·심장재단 ▲2소위 오대양사건 ▲3소위 삼청교육대 ▲4소위 국제그룹·연철사건 등을 계속 다루겠다고 하고있다. 그러나 이것은 당초 조사하겠다던 44개조사대상의 일부에 불과하다.
또 소위가 다루겠다는 사건자체도 대부분 이미 종료됐거나 손대서 별 말썽없을 대상에 국한하고 있다.
골프장 내인가·제2민항·을지로재개발등 굵직한 사건은 손댈 엄두조차 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 손뗄 구실을 찾는 인상이다.
5공 특위가 일해의 문제점 추급에는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 외 정경유착이 두드러지는 사건을 「외면」하는데는 일면의 의혹의 눈초리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이 국회5공특위의 한계이고 이것을 다루는 야당의 한계일는지도 모른다. <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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