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앗, 이게 아닌데’ … 무역전쟁 중 무역적자 5개월 만에 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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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트럼프. [EPA=연합뉴스]

트럼프.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유럽연합(EU)·멕시코·캐나다 등과 전방위로 관세 전쟁을 벌이면서 밝힌 목표는 “미국의 무역적자 축소”다. 주요 수출국이 미국을 공정하게 대하지 않았고, 그 결과 미국의 무역적자가 나날이 커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무역전쟁을 선포했다.

수입 확 늘며 한달 새 9.5% 증가 #‘타깃’ 중국과는 적자 10% 늘어 #미국 3분기 성장률 타격 클 듯 #중국은 7월 무역흑자 32% 줄어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한 7월 무역 성적표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목표한 대로 미국의 무역적자는 줄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무역적자가 줄기는커녕 늘었다. 7월 무역적자 증가는 미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타격을 주고, 무역전쟁의 향배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11월 초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중이 브레이크 없는 충돌로 내달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5일(현지시간) “7월 미국 무역적자는 5개월 만에 최고치인 501억 달러였다”고 발표했다. 전달(457억 달러)보다 9.5% 늘었다. 2015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다. 올해 들어서는 2월(576억 달러) 이후 최대 규모다. 올해 1~7월 무역적자는 3379억 달러로 10년래 최고치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7%(220억 달러) 늘었다. 7월 수출은 1%(2111억 달러) 줄고, 수입은 0.9%(2612억 달러) 늘었다. 상무부는 “무역적자가 3분기 미국 성장률을 억누를 수 있다”고 밝혔다.

관세 폭탄을 주고받은 중국·EU와의 상품 무역적자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대중 상품 무역적자는 전달보다 10% 증가한 368억 달러로 집계됐다. 중국산 상품 수입은 5.6% 늘었는데, 중국으로의 수출은 7.7% 줄었다. 수출이 많이 줄어든 품목은 대두다. 중국은 미국산 대두의 최대 수입국이었다. 7월 대두 수출은 6월보다 7억 달러어치(16.2%) 줄었다. 중국 정부가 미국산 대두를 보복관세 대상 품목으로 일찌감치 예고하자 관세 부과 전인 4~6월 수입업자들이 대두를 선 구매한 영향이 컸다. 중국은 7월 6일부터 미국산 대두에 25% 관세를 매긴다. 민간 항공기 수출액은 7월 16억 달러 감소했다. EU와의 상품 무역적자도 175억 달러로 50.4% 급증했다. 수출은 15.7% 줄었는데, 수입은 2.5% 늘었다. 캐나다와의 무역적자는 6월보다 58% 증가한 31억5000만 달러였다.

무역전쟁으로 수출은 줄었는데 수입이 늘어난 이유는 미국 경제가 호황이기 때문이다. 증시 활황과 탄탄한 고용으로 미국인의 지갑이 두둑해지면서 미국 내 수요가 확대됐다. 달러 강세가 지속하면서 주요 수출국의 수출 가격 경쟁력이 좋아지면서 수입이 늘었다. 추가 관세로 수입 비용이 약간 오르더라도 수요 증가, 유리한 환율이 관세 인상분을 상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당분간 미국 무역적자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역적자 확대는 3분기 GDP 성장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망했다. 2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4.2%(연율)로 약 4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이언 셰퍼슨 이코노미스트는 “2분기와 같은 무역적자 감소를 3분기에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며 “앞으로 몇 달 동안 무역적자는 꾸준히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의 고삐를 바짝 죌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회사 제프리스의 워드 매카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기록적인 무역적자는 미국·EU·중국 간 무역 긴장을 악화시키는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며 “트럼프가 핵심 타깃으로 삼는 중국과 EU에 더 센 공격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역전쟁에 승자는 없다. 중국도 사정이 좋지 않다. 중국의 7월 무역흑자는 280억5000만 달러로, 시장 전망치인 389억2000만 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7월 무역흑자는 6월(414억7000만 달러)보다 32.36% 감소했다. 하지만 수출액(2155억 달러)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2.2% 늘고, 수입액(1875억 달러)은 27.3% 증가해 무역지표가 상대적으로 양호했다. 하지만 7월 생산·소비·투자·고용 등 주요 경제 지표는 모두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1~7월 고정자산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 증가해 시장 전망치(6%)를 밑돌았다. 고정자산투자 증가율이 5%대로 떨어진 것은 1995년 이후 처음이다.

◆ 미국, 대중국 223조원 관세 폭탄 임박=이르면 이번 주 가장 큰 위력을 가진 관세 폭탄이 터진다. 미국 정부가 조만간 2000억 달러(약 223조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최고 25% 관세 부과를 강행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30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 관세 부과 관련 공청회가 끝나는 대로 가능한 한 빨리 관세 부과를 실행하기 원한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완전히 틀린 얘긴 아니다”라고 확인했다. 트럼프는 5일 “중국이 원하는 거래에 합의할 준비가 안 됐다”며 타협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미국이 2000억 달러 규모에 관세를 매기기 시작하면 중국은 즉각 600억 달러 규모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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