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 「끼워 넣기」 여전히 오리무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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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0년 언론인 대량해직 당시 언론사 측의 자의적인 「끼워 넣기」 추가해직 문제는 13일 국회 문공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선 언론사 사주들이 절대로 없었다는 것을 확언함에 따라 새롭게 조명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추가해직이 있었음을 주장하는 해직언론인 측과 언론사 측간 불신의 장벽을 허물어뜨리려면 당시 강제해직을 지시하고 주도한 보안사와 문공부 측 관계자의 증언과 모든 관련자료의 완벽한 추궁이 있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 것이다.
그 동안 해직문제에 대해 해직언론인 당사자들은 언론사에 의한 「끼워 넣기」가 있었다고 믿어왔고 또 그렇게 주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 청문회에서 명단을 직접 만들었다는 이상재 당시 보안사 준위는 90여명의 명단을 권정달 당시 정보처장에게 전달했다고 증언했고 이광표 당시 문공장관은 권 처장으로부터 2백여 명의 명단을 전달받았다고 증언한바 있다.
이와는 달리 무소속의 이철 의원이 문공부 문서를 입수, 공개한 자료에는 정화대상자 3백 36명 중 38명이 보류되고 2백 98명이 해직됐으며 4백 27명의 기자를 포함해 6백 35명이 자체인사 정화됐다고 나타나있다.
따라서 해직언론인을 비롯한 상당수의 사람들은 4백 27명의 해직자는 보안사의 강압이 없었음에도 언론사 자체가 평소 「눈밖에 난 기자」를 해고시킨 케이스로 믿어왔고 문서상 나와있는 기록인 관계로 상당히 설득력 있게 전파됐다.
그러나 이날 청문회를 통해 당시 해직자 명단은 문공부뿐만이 아니라 보안사에서도 다른 명단이 전달됐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MBC 총무국장을 지낸 김기주 증인은 『80년 7월 취임한 이진희 사장이 해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인사기록카드를 가져오라고 해 사장실에 카드를 갖다주러 가보니 책상 양쪽 서랍에 상당히 많은 명단이 메모형식으로 있는 것을 보았다』며 『나중에 보안사에서 온 명단이 한 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또 당시 KBS 사장인 최세경 증인은 7월 18일 60여명에 가까운 1차 해직자 명단이 문공부로부터 내려왔고 4일 후인 22일에는 보안사로부터 40여명에 달하는 2차 해직 대상명단이 내려왔다고 했다.
따라서 MBC의 경우는 김 증인의 얘기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진의 당시 사장이 보안사 명단에 앞서 문공부 명단의 접수사실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KBS의 경우는 최 사장의 증언을 통해 해직자 명단이 이원적으로 전달됐음이 확인됐다.
한편 지난번 청문회에서 이철 의원이 공개한 「언론계 자체정화 계획서」라는 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 문서에 따르면 숙정 대상 언론인은 반체제·용공·불순분자 및 편집·검열 거부자와 그 동조자, 그리고 부조리·부정부패한 자와 특정 정치인·경제인과 유착, 국민을 오도한 자, 기타 사회의 지탄을 받은 자 등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민정당의 손주환 의원은 최세경씨에 대한 신문을 통해 이미 7월초에 각 언론사로 국보위의 자체정화 계획서가 시달됐고 보안사는 숙정 대상자 중 반체제 및 편집·검열 거부자로 판단되는 명단을 문공부에 전달, 해직을 추진케 하는 동시에 보안사가 독자적으로 특정 정치인과 유착된 기자 및 비리 관련자들의 명단을 각 언론사에 주어 해직케 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했다.
때문에 문공부로서는 보안사가 독자적으로 추진한 명단은 갖고있지 않았으므로 지난번 이철 의원이 공개한 문공부 문서에는 자기네가 보안사로부터 전달받은 3백36명 중 2백 98명이 해직 조치됐음을 확인하고 보안사가 각 언론사에 시달, 해직시킨 6백 35명(기자 4백 27명)은 자체정화로 분류한 것이며 실제로 끼워넣기식의 추가해직은 없었다는 것이 손 의원의 주장이다.
이날 청문회에서 각 언론사 사주들도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뺐으면 뺐을 망정 추가한 사실은 절대로 없다고 확언했다.
장강재 한국일보 회장의 경우는 『해직 통고된 기자는 40여명이었으나 나를 비롯한 전 간부가 백방으로 노력, 실제 해직자를 30명으로 줄였다』고 했다.
따라서 80년 언론 대학살의 진상규명이 시작된 이후 줄곧 언론계를 뒤흔들었던 해직기자의 끼워넣기 시비는 언론사 측의 공식적인 부인으로 1막을 끝낸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해직기자들은 「끼워 넣기」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지난번 보안사 측은 2백 98명 이외의 명단에 대해 언급한 바가 없기 때문에 이것으로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닌 것 같다.
결국 이 문제가 완벽하게 밝혀지려면 당시 보안사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권정달씨 등 관계자의 증언이 있어야 하게됐다. 특히 보안사가 문공부를 통해 전달한 2백 98명 외에 추가명단이 있었는지도 밝혀야 할 것이다.
지난번 청문회에서도 야당의원들이 이 부분에 대해 치밀한 진상규명을 하지 않은 채 바로 언론사 측에 의한 끼워 넣기 쪽으로 뛰어넘어 간 것은 물론 정부 쪽의 자료나 정보보다는 피해자 쪽의 자료에 의지한 탓도 있겠으나 원론적으로 따진다면 선입관을 기정 사실화한 명백한 미스였다 할 수 있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지난 75년의 조선·동아 투위 사태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권력의 언론탄압과 언론의 제도화 등 권·언 유착현상이 80년의 언론인 해직과 함께 다루어짐으로써 언론으로서는 뼈를 깎는 자성의 계기도 갖게됐다.
언론사 사주들이 국회 증언대에서 훈계성 질문을 듣게됨으로써 그 어떠한 성역도 없어진 사실이 새삼 입증된 셈이며 그만큼 언론의 책임성도 크게 부각됐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 지나쳐 언론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듯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면 그 또한 다른 하나의 자의와 편견이 될 수도 있음을 국회가 인식해야 할 것 같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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