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홀로서기 나선 '펄 시스터즈' 배인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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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왕, 재벌회장 부인은 다 지난날의 내 이름표일 뿐입니다. 이제 배인순이란 나의 이름으로 세상의 문을 두드리려 합니다. 움츠렸던 나의 날개를 활짝 펴 보일 것입니다."

1998년 동아그룹 최원석(60)회장과 이혼한 뒤 외부 활동을 극도로 자제해왔던 여성듀오 '펄 시스터즈' 출신의 배인순(55)씨가 재기를 선언했다.

裵씨는 18일 방송된 KBS-2TV의 '행복채널'에 출연해 이혼 후 5년간의 '은거' 생활을 끝내고 새 삶을 살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더이상 도망갈 필요도, 용기를 잃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사업 이외에 가수활동도 재개할 뜻을 밝혔다.

裵씨는 동생 배인숙씨와 '펄 시스터즈'를 결성, 68년에 '커피 한 잔''님아''떠나야 할 사람' 등을 잇따라 발표하며 당대 가요계를 풍미했다. 裵씨 자매에게 가수왕(69년)의 영예를 안겨준 것도 이들 히트곡이었다.

崔회장과 결혼하면서 가수 활동을 접었던 裵씨는 30년 만에 이혼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본래의 자신을 찾아 홀로서기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직접 운영하는 앤틱가구점을 겸한 카페와 삭스핀 요리 전문점 건물 지하에 별도의 라이브 공연장을 만들어 노래로 팬들을 다시 만날 예정이다.

이혼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동안 입을 꼭 다물고 살았다는 그는 지난해부터 평상심을 되찾아 노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崔회장은 裵씨와 헤어진 뒤 아나운서 장은영씨와 재혼했다. 裵씨가 崔회장을 만난 것은 가수생활을 하던 무렵이었다. 짧은 전성기를 청산하고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로 떠난 裵씨는 그곳에서 발레와 탭댄스.발성 등을 공부하던 중 崔회장의 청혼을 받았다.

"어느날 아이들 아빠(崔회장)가 시누이와 함께 저를 데리러 뉴욕으로 날아왔어요. 그것은 시아버지의 명령이기도 했지요. 갑작스러운 청혼에 놀랐지만 고심 끝에 노래를 포기하고 결혼하기로 결심했어요."

결혼 생활은 한동안 행복했다. 슬하에 아들 셋을 두었고, 살림도 꼼꼼하게 일궈나갔다.

그러나 지극한 행복 뒤에 찾아온 불행은 무척이나 아팠다. 언제부턴가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삐걱거리는가 싶더니 남편에 대한 바깥 소문도 날로 부풀려지며 불길한 앞날을 예고했다. 급기야 남편은 이혼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아이들을 위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남편의 사랑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10년만 참으면 아이 아빠의 사랑이 돌아오리라고 믿고 기다렸어요. 하지만 세상에는 최선을 다해도 안되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마침내 그동안의 다짐을 접기로 했지요. '절대로 이혼하지 않겠다'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죄인이 된 심정이었죠."

친정어머니는 딸의 이혼 직후 말문을 닫은 채 병석에 누웠다가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믿고 의지하고 지냈던 지인은 裵씨의 재산을 가로채 도망쳐버렸다.

충격으로 병원에서 수면제로 잠을 청해야 했던 그에게 더 큰 슬픔은 아이들을 남편의 가족에게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이혼 후에도 같이 살며 아꼈던 막내아들을 지난해 여름 남편에게 떠나보낼 때는 삶의 공허함에 빠져들었다.

"지난 6월에 있은 큰아들 결혼식 사진은 잡지에서 처음 보았어요. 요즘 막내아들을 간간이 만나 아이들 소식을 전해듣고 있습니다. 큰 위로가 됐던 막내가 없었다면, 아마 약을 먹고 어떻게 됐거나 정신병원 신세를 졌을지 몰라요."

큰아들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등 과거의 아픔이 이토록 컸지만 떠나간 남편과 아들들에 대한 원망은 흐르는 세월 속에 상당부분 지워내고 있는 듯했다.

裵씨는 방송에서 "그분들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지금하고 있는 사업을 발판삼아 앞으로 그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루기 전에는 미리 말하지 않는 성미여서 이 자리에서 자세한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남은 생애에 좀더 좋은 일을 하며 살고 싶어요. 저를 기억하는 40~60대의 팬들이 같이 즐길 수 있는 노래도 부르면서요."

[연합=홍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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