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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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모과' - 김중식(1967~ )

사랑이 고통일지라도 우리가 고통을 사랑하는 까닭은

고통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감내하는 까닭은

몸이 말라 비틀어지고

영혼이 까맣게 탈진할수록

꽃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지속적인 냄새를 피우기 때문이다

꽃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집요한 냄새를 피우기까지

우리의 사랑은 의지이다

태풍이 불어와도 떨어지지 않는 모과

가느다란 가지 끝이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의지는 사랑이다

오, 가난에 찌든 모과여 망신(亡身)의 사랑이여!



모과 냄새를 향기라고 표현하면, 모과는 꽃에 대한 콤플렉스를 자인하는 꼴이다. 냄새와 향기는 다르다. 그러니까 '집요한 냄새'는 지독한 자의식이다. 가난에 지지 않겠다는 도저한 사랑의 의지다. 사랑이 의지라고? 그렇다. 역설적이게도 사랑은 인위(人爲)다. 사랑이 지극한 인위가 아니라면, 사랑은 탐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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