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로 화려한 외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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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판사판이죠. 어차피 잡힐 몸인데 강도짓 한 두 번 더한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7일 오후 1시 서울 강동경찰서 형사계.
지난달 30일 서울 봉천동에서 경찰의 현장검증 도중 달아났던 강도 피의자 홍용표씨(23·서울 봉천5동)가 탈주극 8일만에 이제 막 붙잡혀와 고개를 곧추세운 채 담당형사에게 항의하듯 반문한다.
나이 23세. 강도·절도·폭력 전과 6범. 그의 얼굴에는 눈을 씻고 봐도 죄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현장검증길에 타고 가던 차가 고장나 형사들이 한눈을 파는데 도망 안 갈 범인이 있겠어요.』
도주는 떳떳하고 당연했다는 표정이다.
홍씨는 수갑을 찬 채 인근 산으로 도망친 뒤 수갑을 풀어 팽개치고 당장 그 날밤 자정 가정집에 침입, 옷가지와 가계수표·예금통장을 훔쳤다.
이어 천호동 일대를 배회하며 3일에는 절도, 6일에는 강도 강간, 7일에는 1시간 간격으로 두 차례 도둑질을 해 화려한 외출(?)의 유흥비로 썼다.
『드라이버 1개면 웬만한 집은 다 내 집이나 마찬가지죠. 어쩌다 재수 없으면 잡히기도 하지만….』
그의 뻔뻔한 실력(?) 자랑 앞에서는 취조형사도 말문이 막히는 표정.
『이런 철면피 같은 녀석은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시켜야해.』
보다못해 불쑥 내뱉는 담당형사의 한마디.
치안부재·한탕주의·도덕성 상실 등 우리사회 병리요소들이 눈앞의 실체로 실감되는 듯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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