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백남기 농민 의료비 2억6300만원 국가와 강신명 전 청장 등에게 구상권 청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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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고(故) 백남기 농민이 숨지기까지 들어간 의료비 2억6300만원을 내놔라고 국가와 강신명 전 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국가를 대신해서는 법무부에 청구했다. 이와함께 강 전 청장 외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살수차를 운용한 경장 등 전·현직 경찰관 5명에게 청구했다. 국가와 5명이 연대 보상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국가 대상 진료비 구상권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건보공단은 시국 사건이나 시위 부상자와 관련해 구상권을 행사한 적도 없다.

건보공단은 지난달 24일 구상권 행사를 결정했고 이달 7일 대상자들에게 고지서를 통보했다. 납부기한은 8월 31일이다. 백 농민이 2015년 11월 14일 입원해서 수술을 받고숨질 때까지 317일 간 발생한 진료비를 서울대병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구했고, 심평원 심사를 거쳐 건보공단이 지급했다. 건보공단 급여관리실 김경술 팀장은 31일 "아직 납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지사별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법 58조는 '제 3자의 행위로 보험급여 사유가 생겨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에게 보험 급여를 한 경우 거기에 들어간 비용 한도에서 제 3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얻는다'고 규정한다. 제 3자 행위의 대표적인 사례가 폭행이다. 폭행이 발생해 치료받을 때는 우선 건보 적용하고 건보공단이 나중에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한다. 교통사고도 마찬가지다. 다친 사람에게 건보 적용해 먼저 치료하고 나중에 가해자나 보험회사에게 구상권을 행사한다. 건강보험은 질병 치료비를 지원하는 사회보험이지 폭행 치료비는 지원하지 않는다.

건보공단은 백남기 농민에게 직접 물대포를 쏜 것을 '제 3자 행위'로 간주했다. 백 농민이 치료받게 된 게 국가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근거로 서울중앙지법 형사 24부의 지난 6월 판결을 들었다. 당시 재판부는 백 농민에게 물대포를 직사 살수한 경찰 2명과 현장지휘관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가 지난 2월 백 농민 유족이 국가와 강 전 청장, 구 전 서울청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화해 권고 결정을 한 사실도 근거로 삼았다.

건보공단은 이런 사건의 전례가 없는 점을 고려해 구상권 행사를 결정한 시점과 고지서 발부 무렵에 보건복지부에 구두로 보고했다고 한다. 건보공단 측은 "자체 업무 규정에 따라 실무진이 판단해 구상권 행사를 결정했고 내부 결재를 거쳐 집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확정 판결이 안 났는데도 건보공단이 구상권 행사에 나선 이유는 소멸시효(3년) 때문이다. 백 농민은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중태에 빠졌다. 건보공단은 확정 판결을 기다리면 시효를 넘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공권력 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일을 두고 당사자들한테 책임을 묻는 게 적합한지 논란은 남아 있다. 한 의료계 전문가는 "경찰이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다 과실이 있었다해도 그 책임이 국가에 있는 것인데, 개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게 바람직한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향후 재판 과정에서 이런 게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는 "백 농민 사건은 전형적인 제 3자에 의한 보험급여가 발생한 경우이기 때문에 건보공단이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이며 오히려 하지 않는 게 직무유기"라며 "구상권 행사는 건보 가입자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만약 정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부상·사망이라면 향후 재판과정에서 건보공단의 구상권 행사가 기각될 것이기 때문에 재판부에 맡기면 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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