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일하는 '조연'에도 박수 보내는 사회가 건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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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얼마 전 '삼류 배우'(연출 김순영)라는 연극이 인기를 끌었다. 연극의 주인공은 평생 주연을 꿈꾼다. 그러나 조연밖에 하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햄릿 역(주연)을 맡을 기회가 오지만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만다.

연극처럼 사회에서도 주연은 적고, 조연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연이 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좌절하고 무기력하게 느낀다.

'삼류 배우'의 주인공도 비슷했다. 그는 배우로 성공하지 못해 조연 신세를 면하지 못했고, 그래서 삼류 배우였으며, 삼류 인생을 살았다고 괴로워했을 것이다.

경쟁에 내몰리며 우리는 스스로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다. 따라서 공부를 잘하지 못하거나 부귀를 누리지 못하면, 한마디로 성공하지 못하면 자괴감에 빠지기 쉽다.

현실적으로 주연의 길은 모두에게 열리지 않는다. 문제는 극심한 경쟁심과 우월 의식이 팽배한 사회 분위기가 사람들에게 주연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지는 것, 성공하지 못하는 것, 햄릿 역을 맡지 못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남보다 뛰어난 것만 인정되는 사회에서는 일류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이런 분위기에선 사회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비해 남보다 우월하진 않더라도 묵묵히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내며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본다. 기찻길에서 위기에 처한 어린이를 구해주고 말없이 사라진 역무원, 박봉을 쪼개 매달 얼마씩 기부하는 얼굴 없는 독지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사람들이 존경받아야, 즉 조연도 빛을 봐야 발전 가능성이 큰 사회다.

햄릿 역을 맡기 위한 경쟁은 권장돼야 한다. 하지만 '주연은 일류, 조연은 삼류'라는 등식은 하루빨리 깨져야 한다. 조연은 조연대로 가치가 있고, 주연은 주연대로 존중받는 사회는 언제쯤 올까.

정유진 학생기자(용인 외대부속외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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