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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평당 1억원 짜리 ‘귀족 아파트’ 만든 부동산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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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지난주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단연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었다. 강남에 있는 전용면적 84㎡인 아파트가 29억 5000만 원에 거래됐다. 3.3㎡(평)당 1억 원이 넘는 가격이다. 이 소식을 접한 무주택자와 서민은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작년부터 최고 강도의 규제가 시행됐음을 고려할 때 더욱 놀랍다. 얼마 전까지 부동산 가격 급등은 주로 강남권에서 벌어졌다면, 이제는 강북에까지 옮겨붙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부동산 불안, 강남에서 강북으로 #유동성 급증, 공급 줄어 시장 요동 #정책실패 최대 피해자는 서민들 #땜질 대책 말고 시스템 개혁해야

정부가 설명했듯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격이 안정세를 보였고, 전셋값은 하락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최근 다시 가격 급등 현상이 나타나자 8·27 대책을 발표하더니 추가 대책을 또 마련하고 있다 한다. 지난해 8월 다주택자 규제 중심의 8·2 대책을 낸 이후 국토교통부에서는 부동산시장 안정, 즉 강남을 중심으로 한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에 반해 서울시에서는 가격 상승에 영향을 줄 호재성 정책을 연이어 발표해 시장 혼란을 부채질했다. 이로 인해 강력한 수요 억제책으로 인한 ‘거래 절벽’ 현상 속에서도 가격은 계속 올라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유동성이 급증한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과 이를 다주택자 규제로 일관해 해결하려는 정책이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재건축 규제 강화와 서울시 인허가 과정의 난맥으로 인해 공급은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보여 이런 혼란은 더 심해질 것이다. 선진국들은 시장 상황에 즉흥적으로 일일이 대응하는 정책을 마련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장기적·안정적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너무 조급한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이런 즉흥적 대응으로 인해 시장의 변동성은 더 커지고 결국에는 정부실패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피해는 서민들이 더 크게 입게 될 것이다.

시론 8/30

시론 8/30

얼마 전까지 박원순 서울시장이 옥탑방 생활을 해서 화제가 됐다. 그 과정에서 굵직한 개발구상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여의도와 용산 개발, 그리고 강북에 대한 대대적 투자계획이었다. 중앙정부와 조율이 잘 안 된 때문인지 서로 다른 얘기가 신경전으로 느껴질 정도로 나왔다. 이런 혼란 중에 집값 안정을 중심목표로 하는 중앙정부의 우려대로 박 시장의 개발 계획은 부동산 가격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KB에서 조사한 주간 자료를 보면 지난 20일 기준으로 전국 아파트는 0.19% 상승했지만 이에 반해 서울은 0.72%, 수도권은 0.37%, 지방은 -0.07%로 나타났다. 그중에서 여의도가 포함된 영등포구와 용산은 각각 1.36%와 1.72% 상승했다. 박 시장의 발언이 가격 상승의 기폭제가 됐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가 강남 중심의 상승이었다면 이제는 강북 재개발에 대한 기대로 강북구와 은평·종로구 등을 중심으로 서울 전역에서 가격이 상승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급기야 박 시장은 지난 주말에 개발 구상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 후 해당 지역의 부동산 시장은 더 큰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보류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가격 안정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계획이 좌초하고 ‘용산 민족공원’이 지연돼도 가격은 계속 오른 것을 보면 그렇다.

거기에 더하여 며칠 전 국토부에서 추가로 투기지역을 지정하는 것과 택지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공급대책은 진즉에 냈어야 했는데 뒤늦게 나왔다. 신규 주택 공급의 절반 정도를 맡은 택지공급은 항상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정권에 따라, 경기 부침에 따라 물량이 급변해 부동산 경기의 진폭을 더 키웠다. 이제야 깨닫고 공급확대 방안을 담은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택지공급 사업 자체가 적어도 6~8년 이상 지나야 입주가 가능한 방안이라 정부의 뒤늦은 대응이 아쉽기만 하다.

중앙정부와 서울시는 지금 당장만을 생각하는 포퓰리즘 성격의 정책이 아니라 국민이 장기적·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근원적 시스템 개혁에 집중해야 한다. 수십 년 전부터 땜질식으로 유지해온 공급 체계와 청약 방식, 운영 방식 등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해 시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조율도 되지 않은 정책을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남발해 시장 혼란을 부추기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장기적으로 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신중하게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강남만을 생각해서 지방과 국가 전체를 망각하는 부동산 정책은 피해야 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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