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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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닉슨」은 다리 하나 건너는데 10년이 걸렸다. 미국의 뉴저지에서 뉴욕에 가려면 다리만 건너면 된다. 「닉슨」은 권좌에서 밀려난 후 뉴저지에 살면서 뉴욕에 사무실이라도 차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국민 감정은 그것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닉슨」은 10년도 넘게 그의 고향 남 캘리포니아와 뉴저지를 전전해야 했다. 그는 요즘에야 뉴욕에 아파트를 얻고 사회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신문에 글도 쓰고, 비로소 웃는 얼굴로 친지들과 만나 환담도 한다.
국민에게 거짓말했다는 이유 하나로 그 오랜 세월동안 인고의 생활을 해온 것이다.
그 정도나마 명예를 회복한 것은 본인을 위해 다행한 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비록 임기는 다 마쳤지만 심란하기로는 닉슨과 비슷할 것 같다. 물론 잘못한 일로 치면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참회하고 국민의 관용을 빌어야 하는 입장에선 다를 바 없다.
「닉슨」은 사면 받기는 했지만 10년을 넘게 은둔하며 저술만 했다. 국민의 마음이 삭기를 기다린 것이다.
노 대통령은 전두환씨 내외가 백담사에 은거한지 사흘만에 그의 사죄를 국민들이 받아줄 것을 간곡히 호소했다. 그 담화 가운데는 『…지난 시절을 참회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뉘우침의 나날을 보내는 전임 대통령』이라는 대목도 있었다.
불교에선 뉘우침을 참회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크사마야(Ksamaya)라고 한다. 『참고 용서를 빈다』는 뜻이다. 불교 계율을 보면 참회의 방법에는 상품이 있다.
상품참회는 온몸의 털구멍과 눈에서 피가 나오도록 잘못을 비는 것이다. 그야말로 뼈를 깎는 자기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중품참회는 온몸에서 땀이 나도록 비는 경우다. 하품 참회는 그냥 눈물을 흘리면서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다.
지금 산사에 머무르고 있는 전두환씨 내외는 어느 품의 참회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우리 국민은 어느 품의 참회를 해야만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비록 사법적인 문죄는 면할 수 있을 지라도 국민의 마음이 삭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 며칠 동안 산사의 2평 짜리 어설픈 방에서 지내는 것이나, 감상적인 수사로 끝날 용서는 아니다.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진심의 참회와 겸허 속에 많은 시간의 인고를 달게 받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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