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전씨 백담사 은둔 〃평지풍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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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전두환전대통령 내외가 백담사에 은둔한데 대해 불교계는 「자비무적」의 불교정신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의견과 「10·27법난」을 일으킨 장본인이고 독재자인 전씨가 신성한 정법수호의 도장을 더럽히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전씨가 백담사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게 된 것은 한 측근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불교계에 따르면 그는 전씨 은둔처로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한 스님들에게 강원도 월정사와 백담사 두 곳을 후보지로 생각하면서 의향을 타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일 월정사주지인 도명스님 등 여러 스님과 만나 이 문제를 상의했는데 스님들은 이때 전씨의 사찰 은둔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어느 곳이 좋은지에 대해 논의했다.
처음에는 최근 낙성된 월정사의 새 건물이 거론되었으나 월정사는 경호에 문제가 있고 새로 지은 건물이어서 「전씨가 은둔하기 위해 새로 지었다」는 오해를 살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와 백담사로 의견이 모아졌다.
백담사가 전씨의 은둔지로 결정되자 서의현총무원장은 현장을 둘러보고 준비를 갖추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찰이 전씨 은둔지로 결정된 것은 국민에 대한 전씨의 이미지가 깊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사찰에 은둔함으로써 참회와 고행의 모습을 국민에게 알릴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또 동양적인 은둔은 흔히 대자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어머니 같은 자연의 품속에서 속세 인간의 잘못됨을 씻을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자연회귀와 참회·고행의 모습을 보여주는데는 사찰이 적합한 장소로 손꼽혀왔다.
조계종의 중진스님들은 『전씨의 사찰 은둔을 받아들인 것은 불교의 「자비무적」의 정신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떠한 죄인이라도 부처님의 큰 자비의 품안에선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계종단의 총무원 집행부와 중진스님들이 전씨의 사찰은둔을 받아들인데 대해 민중불교운동연합·대승불교승가회·대학생불교연합회·대한불교청년회서울지부 등의 불교단체들은 성명과 농성·규탄대회 등을 통해 이를 반대하고 있다.
불교재야단체들은 24일밤 개운사에서 전씨가 백담사를 떠날 것을 요구하는 농성을 하고 25일낮 조계사에 모여 규탄대회를 가졌다. 또 동국대에 재학하고 있는 스님들의 모임인 석림회회원 스님들은 전씨의 백담사은둔을 저지하겠다며 백담사에 찾아가기도 했다.
동국대스님들은 『전씨는 불교의 자비정신에 기대어 참회의 모습을 꾸미고 국민의 심판을 피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10·27법난의 책임자인 전씨를 받아들인 승녀들의 반불교적 작태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민중불교운동연합과 대승불교승가회는 성명에서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 아래서 민족의 지도자였던 만해 한용운선사의 숨결이 깃들인 불교성지에 민족의 심판 대상자가 기거한다는 것은 아무리 자비를 제일의 실천강령으로 삼고 있는 불가라 하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히고 『전씨는 정법수호의 도량을 떠나라』고 촉구했다. 전씨가 백담사에 얼마나 머무를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전씨외 백담사은둔을 받아들인 불교 조계종 승려들의 뜻이 진정한 그의 참회와 새롭게 태어나는 「무소유」의 삶을 바라는 원력으로부터 우러나왔다하더라도 세속의 현실은 불교계 자체 내에서 마저 찬·반이 엇갈리는 착잡한 시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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