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으로 동해안 어장 황폐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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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해 태풍 루사로 마을 공동어장이 황폐화돼 한푼도 못건졌는데 올해도 토사가 유입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강원도 동해시 어달동 김성대(48) 어촌계장은 17일 마을 앞바다를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지난해 태풍 루사로 인해 육지에서 쓸려내려온 진흙 등이 바다 속에 가라앉으면서 연안으로부터 6백~7백m 떨어져 있는 마을공동 어장의 전복.우렝쉥이 등의 어패류가 폐사한 악몽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63명의 어민들로 구성돼 있는 이 어촌계의 대부분 계원들은 매년 1억여원을 안겨주던 이 공동어장에서 지난해엔 전혀 수입이 안나오는 바람에 자망어업으로 그동안 간간이 벌어들인 수입과 수협에서 5백만~1천만원씩 받은 대출금으로 살림을 꾸려왔다.

金계장은 "16일까지 해안으로부터 1천5백여m 떨어진 해역이 육지에서 밀려내려온 토사 등으로 뿌옇게 변해 공동어장 관리선이 조업을 나갈 엄두조차 못냈다"며 "지난해 태풍 루사 때보다 심하지는 않지만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강원도 동해안 지역의 다른 어촌계 사정도 마찬가지다.

강릉시 속칭 십리바위~송정 공군휴양소 마을 앞바다에 공동어장을 보유하고 있는 강문어촌계의 경우 지난 15일 태풍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잠수부를 투입했으나 수심 30m도 안보여 실패했다.

임춘봉(51) 강문어촌계장은 "지난해 태풍 루사로 양식어장에서만 2억여원의 피해를 본 뒤 한푼도 보상을 받지 못했는데 3년 전부터 키워온 전복 채취를 눈 앞에 둔 상태에서 피해를 보게 돼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릉시 남항진 어민들도 육지에서 내려온 토사로 배를 정박하는 남대천 하구 수심이 얕아져 장기간 조업 중단이 불가피한 실정이어서 애를 태우고 있다. 지난해 태풍 루사로 평소 3.2m 정도 되던 수심이 얕아져 9개여월 동안 조업을 못한 이 지역 어민들은 이번 태풍으로 수심이 50~60㎝밖에 안될 정도로 더욱 얕아져 지난 13일부터 고기잡이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김원학 어촌계장(56)은 "시청에 준설용 중장비 2~3대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1대만 지원해 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상당 기간 조업이 불가능해진 만큼 당국에서 생계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동어장의 피해는 보상받기가 힘든 상황이다.

강원도 환동해출장소 관계자는 "지난해 태풍 루사로 입은 도내 마을 공동어장 피해액을 1백40억원으로 산정해 해양수산부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공동어장은 어획 대상이 자연 발생적인 동.식물이어서 보상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올해도 피해 보상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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