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를 읽고] 사설학원 자료 들쭉날쭉 수능성적 석차 공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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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는 지난해 고3 담임이었다. 학생들이 수능 시험을 치른 뒤 개인별 성적표가 나왔지만 '이 점수로 어느 대학을 지망해야 하느냐'는 학생과 학부모의 진학 상담 요청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영역별 등급과 종합등급은 나와 있어 대강 그 학생의 전국적 위치를 알 수 있었지만, 전체 수험생을 9개 등급으로 나눈 것이어서 입시지도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각 등급 간에도 몇만명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설 입시기관에서 표본조사를 통해 작성한 '장판지'(전국 대학 점수별 배치표)가 나오고 나서야 겨우 진학 지도에 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장판지도 입시기관마다 차이가 있다.

그런 점에서 3일자에 보도된 행정법원의 공개 판결은 적절하다. 교육부는 '대학의 서열화'를 막고, '점수 위주의 입시'를 지양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항소한다지만 과연 이런 정책 취지가 달성되고 있는가. 결국 사설 입시기관들이 만든 장판지가 서열화된 대학의 각 학과들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다.

대학 서열화는 수능성적 공개로 생긴 것이 아니며, 수능성적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서열화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대학들처럼 정정당당하게 학과별로 석차를 밝히는 것이 학생들의 진로 선택을 돕고 학문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 아닐까.

박종희.서울시 둔촌고 교사